[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대한민국 경찰이 위험하다
지난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관에 들이닥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농성까지 벌인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들은 경총을 향해 적폐라며 ‘해체하라’는 요구 서한을 들고 갔다. 전에 없던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변화 가운데 하나가 노동·사회단체 목소리가 부쩍 커졌다는 점이다. ‘법치의 길에 켜진 적신호’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남의 집 기습에도,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외부인과 이를 막는 경총 직원들 사이의 몸싸움에도 경찰은 방관하다시피 했다. 문제의 서한이 전달될 때까지 1시간 넘게 점거를 지켜봤다.

노총의 경총 기습 방관한 경찰

경찰은 스스로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 알고나 있을까. 그 잘못을 모른다면 ‘난입’으로 규정한 경총의 고소도 제대로 된 사법적 처리는 기대난망이다. 경찰은 방관 이유에 대해 “큰 불법이 없어서…”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불법이면 불법이지, 큰 불법 작은 불법은 무엇인가. 불법을 크기로 판단하는 게 출동지휘관 재량인가. 이게 큰 불법이 아니라는 인식부터가 놀랍다. 사드 기지 앞에서 민간인의 차량 검문도 방치한 경찰이다. 이것도 ‘작은 불법’이어서 방관했나.

경찰이 ‘정치’를 하는 것일까. 경찰까지 정치에 나서면 법치도 민주주의도 다 허사다. 폴리스라인 준수가 민주사회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시민 의무 차원만이 아니다. 폴리스라인을 짓밟거나 넘어서면 법 집행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그것이 위임받은 공권력이며, 법치로 가는 첫 단계다. 법정에서 처벌 경감도 가능하겠지만, 사법부 몫이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입법부가 법을 바로잡게 해야 한다.

노총 조합원이 떼를 지어 뛰어든 상황에서 현장 경찰이 ‘정권의 성향’을 먼저 떠올리고, 노동계와 청와대의 거리를 재고, 경총·노총·정권의 파워관계 함수를 계산하는 식의 저급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제복의 권위와 명예는커녕 당장 복무규정도, 정치적 중립 의무도 다 저버린 것이 된다. 서장급 지휘관이 속보이는 정치나 하는 경찰이라면 누가 검찰의 수사 지휘권과 기소권을 나눠주라고 하겠나.

시위대가 행진 라인을 벗어났다고 83세, 22선(選) 현역 연방 의원을 바로 수갑 채운 미국 경찰을 보라. 우리로 치면 도로교통법 위반 정도였다. 이런 ‘작은 불법’에 그들은 과잉 대응을 했나.

폴리스라인 '정치'로 다뤄선 안돼

또 다른 제복, 군인도 마찬가지다. 가령 연대장, 사단장 정도의 지휘관은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도발이 있으면 즉각 교전수칙에 따라 응징하는 게 직책 의무이며 존재 이유다. “확전이라도 되면?” “후유증이 클 텐데….” “미국과 관계에는?” 이런 판단은 대통령과 정무직 몫이다. 전선의 부대장이 정치로 고민하는 나라에 안보는 없다. 진짜 정치를 하려면 제복을 벗고 선거에 나서면 된다. 정당판에 가든, 국회를 노리든 정치할 권리는 충분히 보장된다. 하지만 제복을 입고 있는 한 규범과 지시대로 따라야 한다. 실탄 공격에 허공으로 총질하고는 맞대응했다는 식의 ‘정무적 판단’은 곤란하다.

안 그래도 정치가 넘치는 게 문제다. 판사들까지 집단 목소리를 키우니 심각한 정치과잉 사회다. 정권이 바뀌자 특정인의 사인(死因)이 변하는 걸 보면 의사들도 정치에 휘말린 건 아닌가 싶다. 두렵게도, 정치과잉병은 더 심해질 것 같다. 그럴수록 법치의 최일선에 선 경찰은 법과 규정만 보고 가야 한다.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이 왜 나왔나. ‘정치 경찰’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경찰도 주의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