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탈(脫)핵 국가로 가는 출발점이자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대전환”이라고 말했다. 탈원전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말했지만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와 민간, 산업계와 과학기술계가 함께해야 하고, 국민의 에너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탈원전 주장도, 또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에너지정책도 철저하게 ‘사실’과 ‘과학’을 토대로 해야 할 것이다. 자칫 구호나 감성 등에 이끌리면 오히려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신만 가중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걱정되는 점이 적지 않다. ‘탈핵’이라는 용어부터 부적절하다고 본다. 에너지를 말하면서 굳이 부정적 어감을 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편견이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고 한 것도 그렇다. 노환, 피난 중 질병 등에 의한 사망까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선 사고 탓인 양 들리게 하는 건 위험하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세월호와 같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이면 고리 1호기와 동일한 노형의 원전이 미국에서 계속운전 승인을 받아 가동되고 있는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대통령이 서구 선진국가들이 빠르게 원전을 줄이며 탈원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한 것도 한 쪽만 본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탈원전 국가로 알려진 독일은 화력 발전과 전력 수입이 증가했고, 영국은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사국인 일본이 원전 재가동을 늘리고 있고, 탈원전을 선언했다는 대만도 원자력위원회가 가동 중지했던 원전 2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에너지 정책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국가별 여건에 따라 제각각이다. 더구나 한국은 에너지에 관한 한 ‘고립된 섬’이다. 탈원전을 부르짖더라도 엄정한 사실과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경제주체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