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민간 보험회사의 실손보험료를 사실상 강제 인하토록 하면서 제시한 명분은 공적(公的) 보험인 국민건강보험(건보)의 보장성 강화다. 정부가 건보 재정지출을 늘려 보장범위를 확대할 테니 보험사는 아낀 보험금만큼 보험료를 낮추라는 것이다.

정부는 건보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2015년 기준 건보 보장률은 63.4%다. 의료비(비급여 포함)로 1만원이 나왔다면 6340원을 건보 재정으로 부담했다는 얘기다. 정부의 보장률 확대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치매 의료비는 80%에서 90%로, 어린이 입원 진료비는 80%에서 95% 이상으로 높아진다.

환자 간병비, 특진비(선택진료비), 상급 병실료(3인실 이상) 등 비급여 항목도 단계적으로 급여화해 건보에서 보장할 계획이다. 노인 틀니 및 치과 임플란트, 보청기에 대한 건보 적용도 확대한다. 소득 하위 50%까지는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액을 연간 100만원까지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한다. 올해 기준 소득 하위 10%의 본인부담 상한액은 121만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계획에는 건보 재정수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건보료 수입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출만 늘리면 재정수지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금 상태로도 건보 재정수지는 내년에 적자로 전환된다.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적립금 21조원은 2023년이면 소진될 전망이다.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적립금 소진 시점이 더 당겨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그러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건보료 인상에 대해선 “얘기하기 이르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올해 건보료율은 월 보수의 6.12%다. 직장가입자는 본인과 회사가 반씩 부담하고 있다.

건보료 인상 없이 지출만 늘리다 적립금이 바닥나면 세금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다. 건보 운영 재원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와 정부 지원금(보험료 수입의 20%)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건보 보장성을 높이려면 건강보험료를 더 걷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