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근로소득 면세자
외교관 특권 가운데 하나가 면세(免稅) 특혜다. 관습법에 따랐던 외교관의 이 특권이 국제적 규범으로 굳어진 계기가 1961년 81개국이 참가한 ‘외교관계에 관한 빈 조약’이다. 한국도 관련 법들을 통해 수교국 외교관뿐 아니라 국제기구 종사자도 면세 범위에 넣어두고 있다. 북한이 외교관까지 동원한 밀수 스캔들로 종종 물의를 일으키는 주요 통로도 면세 특례다.

상당수 종교인들도 여전히 세금의 예외지대에 있다. 근로소득세를 자진납부하는 성직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세금을 내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0조의 두 번째 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것과 연결해보면 법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종교인 과세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뜨거운 감자’다. 2015년 법은 개정됐지만 막상 2018년부터인 시행시기가 다가오자 종교계 저항이 만만찮다. 더구나 여권 내에서 ‘시행 2년 추가 연장’(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예정대로 내년 시행’(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장이 맞부딪치면서 정부 방침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면세자는 일반 월급쟁이 중에도 상당히 많다. 온갖 감면조항 덕에 결과적으로 면세자가 됐다는 점에서 외교관이나 종교인과는 다르다. 논점은 국내 근로자의 46.8%(2015년, 국세청)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는 사실이다. 근로소득세 면제자가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지만, 810만 명이나 된다니 어떤 식으로든 손볼 때가 됐다.

그제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는 그래서 관심이 더 쏠렸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이 연구원에 면제자비율 축소방안을 의뢰한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러 갈래인 감면조항과 축소범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저소득층 세부담 증가가 기재부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넓은 세원, 낮은 세율’로 경제에 활력 불어넣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너무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소득세 면제 비중이 미국 35%, 호주 25%, 영국 6%다. 한국의 면제자 비중이 너무 높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국민개세(皆稅)주의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복지지출에 따라 설사 나중에 증세론을 펴더라도, 세제의 틀을 건전하게 갖춘 뒤에라야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필요는 하지만 내 임기 중엔 않겠다’로 가다가는 ‘조세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