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여러 근본적인 가치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법)를 폐기하려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예산안은 유아교육, 푸드스탬프(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 등 모든 분야에서 대규모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그의 세제개혁안은 ‘가진 자’에게 더 많은 소득을 재분배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그가 파리 기후변화협정을 철회하겠다는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은 미국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그 결정은 지구의 건강과 복지를 위기에 빠뜨렸다.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연방제 국가임을 되새겨볼 때다. 미국 수정헌법 10조는 ‘명시적으로 연방정부에 위임되지 않은 모든 권한은 각 주(州)가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정부의 권한을 강조한 것은 노예제나 흑백분리 법안을 옹호하는 이들이었다. 최근에는 보수 성향의 주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진보적 입법을 거부하기 위해 수정헌법 10조를 언급하곤 했다.

이제 공수(攻守)가 뒤바뀌었다. 사회적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진보적 연방법 폐기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이런 추세에 반대하기 위해 주정부의 권한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환경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캘리포니아 등 15개 주는 이미 차량 배기가스에 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도입했다. 15개 주의 인구 비중은 미국 전체의 40%에 달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서로 다른 기준에 맞춰 차를 생산할 형편이 아니다. 캘리포니아가 미국 전체의 배기가스 기준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경제 규모가 세계 6위에 이르는 캘리포니아가 파리 기후변화협정의 의무와 관리감독 체계를 되살리기 위해 직접 중국 등과 자발적인 기후협약에 서명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캘리포니아의 탄소배출권 거래 프로그램 도입을 고려하는 중이다.

캘리포니아 시민들은 교육과 사회적 서비스에 지출을 많이 하는 것을 선호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미 미국 내 최고 개인·법인 소득세율을 감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동료인 UC버클리 경제학과 이매뉴얼 사에즈와 개브리얼 저크먼은 이 문제에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첫째는 글로벌 기업의 이익에 캘리포니아 내 매출 비중에 해당하는 만큼 추가로 과세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캘리포니아 시민이 보유한 2000만달러 이상의 자산에 1% 부유세를 물리는 것이다. 또 다른 버클리 동료 로라 타이슨(경영학)이 ‘진보적인 연방제’라고 명명한 이런 조치에 대해서는 온건한 반응과 적대적인 반응,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온건한 반응을 가정하는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은 큰 정부나 작은 정부 등 취향에 따라 거주지를 옮길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예산 담당자인 믹 멀버니가 지난 3월 육아휴직을 각 주에 강제하는 문제를 두고 “왜 지역적인 문제를 조정하고 고치기 위해 연방정부가 개입해야 하느냐”고 대꾸한 것도 온건 반응 사례다.

반면 좀 더 적대적인 반응을 가정한 시나리오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는 진보 성향 주의 권리를 제한하려 할 것이다. 관련된 자금원을 묶는다든가, 근거법의 시한이 만료됐을 때 갱신해주지 않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각 주가 기후협약을 다른 나라와 직접 체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의 상업 관련 조항을 들먹일 수 있을 것이다. 주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그램 비용이 증가하게 만들려고 연방 차원에서 주세에 제공하는 각종 공제제도를 없앨 수도 있다.

온건한 반응이 나올지, 적대적인 반응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인들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이제부터 확인할 참이다.

정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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