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고추농사 '매운맛' 보던 시아버지…큰며느리 덕분에 이젠 '화끈한 맛'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백두대간 낙동정맥 5구간 애매랑재. 이곳 산골에는 유기농 고추가 자란다. 김창섭 답운농장 대표는 5000평 규모의 농장에서 과일고추 6000㎏과 고춧가루용 건고추 1000㎏ 등 총 7000㎏의 고추를 아들 내외와 함께 키운다. 김 대표는 한국 유기농업의 1세대다. 1994년 설립된 울진 유기농 공동체인 방주공동체의 창립 멤버다. 김 대표가 농사지은 유기농 고추를 판매하는 건 며느리 권나영 씨 몫이다. 35년째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있는 김 대표와 며느리 권씨의 ‘고추농사 합작품’ 얘기를 들어봤다.

국내 유기농 1세대 시아버지

[한경·네이버 FARM] 고추농사 '매운맛' 보던 시아버지…큰며느리 덕분에 이젠 '화끈한 맛'
김 대표는 국내에 친환경 유기농법이 본격 도입될 무렵인 1980년대 말부터 유기농에 관심을 가졌다. 해외 농업 선진국을 돌아다니며 친환경 농업인들을 만났다. “고추는 소금 다음으로 많이 쓰는 양념이잖아요. 우리 국민들이 친환경 고춧가루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발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가 유기농사를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엔 유기농 비료나 벌레 퇴치제가 없었다. 직접 만들어야 했다. “진딧물이 담배연기를 싫어한다는 얘기를 참고해 담배를 활용한 퇴치제도 만들어보고, 불빛을 이용해 벌레를 쫓아내는 장치도 만들었지만 허사였어요”

첫 3년 수확은 일반 농사를 지을 때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유기농 소비단체인 한살림을 만난 것이 이 무렵이다. 그는 “반 포기 상태에서 판매처가 생겼는데 생각보다 좋은 값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유기농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무농약 재배 어려운 고추에 도전

[한경·네이버 FARM] 고추농사 '매운맛' 보던 시아버지…큰며느리 덕분에 이젠 '화끈한 맛'
고추는 유기농사가 어려운 채소다. 김 대표는 “고추는 땅속 미생물을 많이 먹고 자란다”며 “원래는 1년 재배하면 1년은 땅을 쉬게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개 농약을 쓴다. 김 대표는 농약을 대체할 땅의 영양분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친환경 영양제 개발에 나선 이유다. 산과 들에서 채취한 할미꽃 뿌리, 쑥, 미나리를 비롯해 달걀 껍질의 천연 칼슘, 생선의 아미노산 성분 등을 조합했다.

그러다가 한방 찌꺼기를 알게 됐다. 2005년께 사슴농장을 하던 며느리 권나영 씨의 아버지가 녹용과 보약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사용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한방 찌꺼기와 미생물 영양제를 혼합해 ‘한방액비EM발효미생물’을 비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연작이 가능해지고 생산량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판매 루트 뚫은 큰 며느리

고추 생산은 안정화됐지만 판매처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김 대표가 유기농업을 확대한 1990년대 말에는 오히려 상황이 괜찮았다. 유기농산물 공급량이 적어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는 친환경 비료 등이 많이 나오면서 유기농 인증을 받는 농가도 많아져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매년 거래하던 친환경 식품업체로부터 뒤통수도 맞았다. 김 대표는 “고춧가루 300㎏을 가져가기로 얘기를 해놓고, 절반만 사간 후 나머지는 못 사겠다고 했다”며 “나머지 150㎏을 버려야 할 상황이었다”고 했다.

며느리 권씨가 답운농장 마케팅 담당으로 나선 것이 이때다. 2012년 결혼 후 서비스업을 하던 그는 150㎏의 고춧가루를 팔기 위해 인터넷의 문을 두드렸다. 사진을 찍고, 웹페이지를 제작하고, 주변 지인을 동원해 홍보에 나섰다. 150㎏ 중 90㎏을 팔았다. 이후 권씨는 온라인 판매에 전면적으로 나섰다. 네이버 산지직송 초창기 멤버로 판매 페이지를 열었다. 젊은 사람들을 겨냥해 250g짜리 소포장 제품을 만들고, 포장 디자인도 아기자기한 것으로 바꿨다. 권씨는 “예전엔 고추가 남아 폐기하는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다음해 햇고추가 나오기 전에 모두 판매된다”며 “한 해 8000만원쯤 이익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아찌 등 신상품 개발

답운농장의 주력 품목은 고춧가루와 과일고추다. 과일고추는 아삭한 식감의 오이고추 크기를 작게 개량한 품종이다. 권씨는 과일고추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장아찌 레시피를 개발했다. 권씨는 “레시피를 개발한 후 산지직송 랭킹 1위에 올라 하루에 100박스씩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아찌와 함께 고추부각도 개발했다. 고추스낵도 만들 계획이다.

김 대표는 경북지역 대표 농업인 중 한 명이다. 2005년 전국 친환경농산물 품평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경북 우수 농산물 명품 브랜드 선정,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표창 등을 받았다. 그는 “한방 액비를 더 개량해 진짜 보약의 영양성분이 녹아드는 고추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011460702

FARM 강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