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정부 불신과 국가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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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후쿠야마가 한국은 저신뢰 사회이고 그래서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비판했을 때 많은 이들이 불쾌해했다. 그러나 요즘 같아선 그 지적이 소박하게만 보인다. 현실은 입법 사법 행정 모두에서 불신이 노정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행정, 즉 정부가 문제다.
정부가 불신받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능력이 문제다. 미제스의 통찰 그대로 정부는 모든 가격을 계산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있고 그래서 계획경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사회주의는 1990년대에 종말을 고했다. 인구가 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정부의 능력은 더욱 더 의심받게 돼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 경제 정책이 끝난 1980년대 이후 정부의 능력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년 성과연봉제 결국 백지화
능력보다 더 큰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민주적’ 국가일수록 더 심각하다. 새 정파가 정권을 잡을 경우 정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성과연봉제를 보라.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부문 개혁의 상징이었던 이 성과연봉제는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뿌리가 뽑혔다. 오히려 성과를 인정받았던 사람들이 토해내야 할 형편이다. 그 돈이 160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성과연봉제가 박근혜 정부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멀게는 김대중 정부 때 IMF 프로그램에 따른 정책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에선 일하는 만큼 보상도 달라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후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고 이 제도를 실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20년을 공들여 겨우 정착 단계로 들어서려던 성과연봉제가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탈(脫)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2015년 정부가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은 사실상 백지가 됐다. 하기야 정부는 올해 말에 ‘8차 계획’을 새롭게 내놓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전 건설에 관한 한 세계 1위라고 자랑하던 나라가 탈원전을 선언했으니 수출길은 완전히 막혔다. 원전 사업을 못하게 된 중공업 업체들의 일자리는 또 어떻게 되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해외로까지 번지게 됐다.
'못 믿을 나라' 자초하는 무리수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로 돌아가보면 정부야말로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있을 때도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강변한 게 정부다. 지나고 보니 거짓말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였다. 당시 서슬 퍼런 금융당국이 전가의 보도인 양 내놓은 방침이 ‘부채비율 200%’ 였다. 근거도 없는 이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나라 경제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인원도 정리하지 못하게 하고, 부실 처리도 ‘알아서’ 하라고 압박한 것이 정부였다.
정부 말을 안 들으면 ‘괘씸죄’요, 말을 잘 들었다가 정부가 나중에 모른 척하면 범법이 된다. 정부와 은행의 ‘지도’에 따라 부실기업을 법정관리로 보내지 못하고 다른 우량계열사와 합병했다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치가 행정을 죽이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온다. 특히 기업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신규 사업도, 채용도 마찬가지다. 5년마다 한 번 있는 홍역이 아니다. 정부 불신이 증폭되면 그것이 바로 국가 리스크다. ‘못 믿을 나라’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정부가 불신받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능력이 문제다. 미제스의 통찰 그대로 정부는 모든 가격을 계산할 수 없다. 계산할 수 있고 그래서 계획경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사회주의는 1990년대에 종말을 고했다. 인구가 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정부의 능력은 더욱 더 의심받게 돼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 경제 정책이 끝난 1980년대 이후 정부의 능력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년 성과연봉제 결국 백지화
능력보다 더 큰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민주적’ 국가일수록 더 심각하다. 새 정파가 정권을 잡을 경우 정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성과연봉제를 보라.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부문 개혁의 상징이었던 이 성과연봉제는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뿌리가 뽑혔다. 오히려 성과를 인정받았던 사람들이 토해내야 할 형편이다. 그 돈이 160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성과연봉제가 박근혜 정부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멀게는 김대중 정부 때 IMF 프로그램에 따른 정책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에선 일하는 만큼 보상도 달라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후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고 이 제도를 실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20년을 공들여 겨우 정착 단계로 들어서려던 성과연봉제가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탈(脫)원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2015년 정부가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은 사실상 백지가 됐다. 하기야 정부는 올해 말에 ‘8차 계획’을 새롭게 내놓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전 건설에 관한 한 세계 1위라고 자랑하던 나라가 탈원전을 선언했으니 수출길은 완전히 막혔다. 원전 사업을 못하게 된 중공업 업체들의 일자리는 또 어떻게 되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해외로까지 번지게 됐다.
'못 믿을 나라' 자초하는 무리수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로 돌아가보면 정부야말로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있을 때도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강변한 게 정부다. 지나고 보니 거짓말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였다. 당시 서슬 퍼런 금융당국이 전가의 보도인 양 내놓은 방침이 ‘부채비율 200%’ 였다. 근거도 없는 이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나라 경제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인원도 정리하지 못하게 하고, 부실 처리도 ‘알아서’ 하라고 압박한 것이 정부였다.
정부 말을 안 들으면 ‘괘씸죄’요, 말을 잘 들었다가 정부가 나중에 모른 척하면 범법이 된다. 정부와 은행의 ‘지도’에 따라 부실기업을 법정관리로 보내지 못하고 다른 우량계열사와 합병했다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치가 행정을 죽이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온다. 특히 기업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말을 듣지 않으려 할 것이다. 신규 사업도, 채용도 마찬가지다. 5년마다 한 번 있는 홍역이 아니다. 정부 불신이 증폭되면 그것이 바로 국가 리스크다. ‘못 믿을 나라’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