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표류기] 청년창업은 현실의 출구?…또 다른 현실의 입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남들은 제가 꿈 좇아간다고 하지만, 현실은 돈에 쫓기며 살고 있어요. 일단 직장 다니며 모은 돈으로 1년만 버텨보려고요.”
경기도 고양시에 인쇄물 디자인 회사를 창업한 김모 씨(29)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김씨는 4개월 차 청년창업가다. 2년간 다닌 서울 직장을 관두고 동업자 친구와 함께 자본금 4000만원으로 창업했다. 근근이 일거리가 들어오지만, 직장 다닐 때에 비하면 턱없이 벌이가 부족하기만 하다. 김씨가 처음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일한 만큼 받고 싶다.’
직장을 다니며 월급은 매년 늘었지만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적게만 느껴졌다. 매일밤 야근 강행군에도 몸이 힘든 것보다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허탈감이 더욱 컸다고 했다.
지난 4월 입사 2년째, 김씨는 과감히 사표를 냈다. 주변 만류도 뿌리쳤다. 청년실업자가 120만명에 달하는 시대를 살며 취업이 능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대기업 정규직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기 자본금 중 임대료로 절반인 2000만원을 썼다. 서울의 값비싼 임대료를 피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변두리에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한 달 월세만 100만원이다. 월세와 생활비는 한 달 수익으로 빠듯했다.
청년사업가의 발목을 잡는 건 또 돈이다. 일단 일거리를 늘리려면 홍보가 필수인데, 광고나 마케팅도 돈이 든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대세라지만,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매달 지출하기엔 부담이 크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구조. 초기 자본금이 넉넉지 않은 청년창업가가 선택할 수 있는 홍보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 뿐이었다. 매일같이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잠재고객을 찾아나선다. 김씨는 “전문적으로 광고나 마케팅를 알진 못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건 결국 실력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신모 씨(28)는 올초 서울시 구로구 7평 오피스텔 자치방을 사업자등록하며 창업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영상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만이다. 몇편을 만들든 월 200만원이던 월급 대신 건당 200만원 제작비를 직접 챙긴다.
돈은 전보다 많이 벌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커졌다. 책임감과 불안감이다. 개인사업자가 되면서 시간도 많아졌다. 문제는 이 시간이 주는 무게였다. “스스로 능력을 판단해 일을 조율해야 하는데 촉박하게 잡으면 몸이 힘들고, 지나치게 여유롭게 잡으면 수입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씨는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으려 채찍질하듯 일했다. 그러다보니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렸다. “누가 출퇴근 시간을 정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계속 일하게 된다”며 “사업 초기라 클라이언트(고객)를 확보하려면 더 노력해야된다”고 말했다.
할 일도 늘었다. 앉아서 영상만 만들 수도 없었다. 회사를 나오니 홍보와 영업, 고객 미팅도 직접 해야 했다. 이 와중 울며겨자먹기식 일감도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일이 '수정'이다. 젊은 개인 사업자이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부탁을 쉽게 하는 경향이 많았다. 계약 내용과 관계없는 '도와달라' 식의 수정 요청이었다. 예전 만든 영상을 다시 고쳐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당연히 무보수로 말이다.
신씨는 “그래픽 영상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업계 처우는 아직 못 따라가는 실정”이라며 아쉬워했다. 현실적으론 거부하긴 힘들다. 클라이언트와 관계 유지가 중요해서다. 특히 사업 초기이자 나이가 어린 창업자에게 클라이언트는 몇 없는 소중한 존재다. “기존 시장에 뛰어들려면 열정만으로는 안됩니다. 시스템 앞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해요.”
오모 씨(27)는 올해 3월까지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1년 간 운영했다. 대학 휴학생 신분이라 사업자금이 없어 친구와 함께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1500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처음엔 동대문에 기반을 둔 공장 의류를 도매로 사 소셜커머스에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돈을 모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게 목표였다.
한때 월 최고 1000만원도 벌었다. 몇개월간 승승장구하며 꿈이었던 의류 브랜드도 론칭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였다. 소셜커머스에서 오프라인 편집숍으로 유통구조를 넓히며 발목이 잡혔다.
내가 만든 옷이 아닌 공장 의류는 판매금의 10%대 수수료만 소셜커머스 플랫폼에 내면 팔 수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윤은 꽤 남았다. 하지만 내 브랜드는 디자인, 생산, 유통까지 죄다 책임져야 했다. 공장 선정부터 주문 제작까지 공장 의류에 비해 제작단가가 높았다. 게다가 국내 브랜드가 많이 입점한 유명 온라인 편집숍 판매 수수료는 30%대 였다. 10만원짜리 옷을 팔면 3만원 넘게 편집숍이 가져갔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감수했지만 곧바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엎친데 덮친격, 동업자 친구와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오씨는 당장 수익이 적어도 꿋꿋이 브랜드 사업을 개척하려 했다. 동업자는 반대였다. 당장 매출이 급했다. 결국 둘은 창업 1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친구 사이도 금이 갔다. 오씨는 “준비와 운영을 각각 1년씩 해보며 많은 걸 느꼈다”며 “시장 조사와 같은 이론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더라”고 전했다.
취재에 응해 준 청년창업가 3인은 '창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창업은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아닌 또 다른 현실의 '입구'라고 말이다. 취업난 해결책으로 청년 창업이 약방의 감초마냥 등장하지만 실제 창업에 몸을 던진 청년들은 고민이 깊었다. 문재인 정부도, 유명대학도, 대기업도 '혁신'을 내세워 창업을 권하고 있다. 언론도 연일 청년 창업 성공기를 조명한다. '억대 매출' 청년 장사꾼들 이야기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년 CEO가 배출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6년 30세 미만 창업가가 세운 신설법인은 총 6062개로 전년 대비(4986개) 2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모든 연령대 신설법인 수는 9만3768개에서 9만6155개로 약 2.5% 증가하는데 그쳤다. 청년 창업이 8배 이상 많은 셈이다. 그러나 어둠도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전용 창업자금 약정해지 현황'에 따르면 대출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해 청년창업대출 계약이 해지된 건수는 2014년 107건에서 2015년 221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미상환 금액만 2015년 124억에 달한다. 2016년 1년새 30세 미만 신설법인이 21.5%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청년 창업자 수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공식자료는 없다. # ‘청년 표류기’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뉴스래빗 페이스북 facebook.com/newslabi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lab@hankyung.com
경기도 고양시에 인쇄물 디자인 회사를 창업한 김모 씨(29)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김씨는 4개월 차 청년창업가다. 2년간 다닌 서울 직장을 관두고 동업자 친구와 함께 자본금 4000만원으로 창업했다. 근근이 일거리가 들어오지만, 직장 다닐 때에 비하면 턱없이 벌이가 부족하기만 하다. 김씨가 처음 창업을 결심한 계기는 단순했다.
‘일한 만큼 받고 싶다.’
직장을 다니며 월급은 매년 늘었지만 늘어나는 업무에 비해 적게만 느껴졌다. 매일밤 야근 강행군에도 몸이 힘든 것보다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허탈감이 더욱 컸다고 했다.
지난 4월 입사 2년째, 김씨는 과감히 사표를 냈다. 주변 만류도 뿌리쳤다. 청년실업자가 120만명에 달하는 시대를 살며 취업이 능사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대기업 정규직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기 자본금 중 임대료로 절반인 2000만원을 썼다. 서울의 값비싼 임대료를 피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변두리에 스튜디오를 차렸지만, 한 달 월세만 100만원이다. 월세와 생활비는 한 달 수익으로 빠듯했다.
청년사업가의 발목을 잡는 건 또 돈이다. 일단 일거리를 늘리려면 홍보가 필수인데, 광고나 마케팅도 돈이 든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이 대세라지만, 적게는 10만원부터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매달 지출하기엔 부담이 크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구조. 초기 자본금이 넉넉지 않은 청년창업가가 선택할 수 있는 홍보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 뿐이었다. 매일같이 제안서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잠재고객을 찾아나선다. 김씨는 “전문적으로 광고나 마케팅를 알진 못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건 결국 실력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신모 씨(28)는 올초 서울시 구로구 7평 오피스텔 자치방을 사업자등록하며 창업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영상디자인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만이다. 몇편을 만들든 월 200만원이던 월급 대신 건당 200만원 제작비를 직접 챙긴다.
돈은 전보다 많이 벌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커졌다. 책임감과 불안감이다. 개인사업자가 되면서 시간도 많아졌다. 문제는 이 시간이 주는 무게였다. “스스로 능력을 판단해 일을 조율해야 하는데 촉박하게 잡으면 몸이 힘들고, 지나치게 여유롭게 잡으면 수입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씨는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으려 채찍질하듯 일했다. 그러다보니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렸다. “누가 출퇴근 시간을 정해주는 게 아니다 보니 계속 일하게 된다”며 “사업 초기라 클라이언트(고객)를 확보하려면 더 노력해야된다”고 말했다.
할 일도 늘었다. 앉아서 영상만 만들 수도 없었다. 회사를 나오니 홍보와 영업, 고객 미팅도 직접 해야 했다. 이 와중 울며겨자먹기식 일감도 비일비재했다. 대표적인 일이 '수정'이다. 젊은 개인 사업자이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부탁을 쉽게 하는 경향이 많았다. 계약 내용과 관계없는 '도와달라' 식의 수정 요청이었다. 예전 만든 영상을 다시 고쳐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당연히 무보수로 말이다.
신씨는 “그래픽 영상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업계 처우는 아직 못 따라가는 실정”이라며 아쉬워했다. 현실적으론 거부하긴 힘들다. 클라이언트와 관계 유지가 중요해서다. 특히 사업 초기이자 나이가 어린 창업자에게 클라이언트는 몇 없는 소중한 존재다. “기존 시장에 뛰어들려면 열정만으로는 안됩니다. 시스템 앞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해요.”
오모 씨(27)는 올해 3월까지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1년 간 운영했다. 대학 휴학생 신분이라 사업자금이 없어 친구와 함께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1500만원을 빌려 창업했다. 처음엔 동대문에 기반을 둔 공장 의류를 도매로 사 소셜커머스에 판매했다. 당시만 해도 돈을 모아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게 목표였다.
한때 월 최고 1000만원도 벌었다. 몇개월간 승승장구하며 꿈이었던 의류 브랜드도 론칭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였다. 소셜커머스에서 오프라인 편집숍으로 유통구조를 넓히며 발목이 잡혔다.
내가 만든 옷이 아닌 공장 의류는 판매금의 10%대 수수료만 소셜커머스 플랫폼에 내면 팔 수 있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윤은 꽤 남았다. 하지만 내 브랜드는 디자인, 생산, 유통까지 죄다 책임져야 했다. 공장 선정부터 주문 제작까지 공장 의류에 비해 제작단가가 높았다. 게다가 국내 브랜드가 많이 입점한 유명 온라인 편집숍 판매 수수료는 30%대 였다. 10만원짜리 옷을 팔면 3만원 넘게 편집숍이 가져갔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감수했지만 곧바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엎친데 덮친격, 동업자 친구와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오씨는 당장 수익이 적어도 꿋꿋이 브랜드 사업을 개척하려 했다. 동업자는 반대였다. 당장 매출이 급했다. 결국 둘은 창업 1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친구 사이도 금이 갔다. 오씨는 “준비와 운영을 각각 1년씩 해보며 많은 걸 느꼈다”며 “시장 조사와 같은 이론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더라”고 전했다.
취재에 응해 준 청년창업가 3인은 '창업은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창업은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아닌 또 다른 현실의 '입구'라고 말이다. 취업난 해결책으로 청년 창업이 약방의 감초마냥 등장하지만 실제 창업에 몸을 던진 청년들은 고민이 깊었다. 문재인 정부도, 유명대학도, 대기업도 '혁신'을 내세워 창업을 권하고 있다. 언론도 연일 청년 창업 성공기를 조명한다. '억대 매출' 청년 장사꾼들 이야기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년 CEO가 배출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6년 30세 미만 창업가가 세운 신설법인은 총 6062개로 전년 대비(4986개) 2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모든 연령대 신설법인 수는 9만3768개에서 9만6155개로 약 2.5% 증가하는데 그쳤다. 청년 창업이 8배 이상 많은 셈이다. 그러나 어둠도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전용 창업자금 약정해지 현황'에 따르면 대출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해 청년창업대출 계약이 해지된 건수는 2014년 107건에서 2015년 221건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미상환 금액만 2015년 124억에 달한다. 2016년 1년새 30세 미만 신설법인이 21.5%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청년 창업자 수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공식자료는 없다. # ‘청년 표류기’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뉴스래빗 페이스북 facebook.com/newslabit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la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