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5 전몰'서울대생이 남긴 빛바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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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6·25전쟁 67주년
서울대, 전쟁때 순국한 동문 스토리텔링 사업 추진
기록관에 남아 있는 7명 취재 연말께 한권의 전기로 출간
서울대, 전쟁때 순국한 동문 스토리텔링 사업 추진
기록관에 남아 있는 7명 취재 연말께 한권의 전기로 출간
“참다못하야 오늘에야 붓을 들지 않을 수 없어 비감한 생각으로 삼가 여지까지의 사정을 사뢰게 되었소. … 이 편지를 읽는 집안의 놀라운 장면을 생각하니 쓸 용기가 나지 않소. … 누님이 슬퍼하실 모습이 눈에 환연하여 당신에게 하는데 이것을 보면 누님과 어린것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소이까.”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하다 학도호국대 장교로 입대한 고(故) 김세환 씨가 6·25전쟁 직후 북한군 포로가 된 자형의 소식을 부인에게 전한 편지글이다. 결혼 5년차이던 그는 전쟁이 나자 아내와 딸을 남기고 군에 지원했다. 함께 있던 자형의 소식을 차마 누이에게 전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만 알렸다. 비감·그리움·의지로 뒤범벅된 편지
“근심 마십시오. 서울도 탈환되었으니 자형도 돌아가야 할 텐데…. 저는 중부전선이어서 서울 집에도 가보지 못하겠소이다.” 1950년 9월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자 김씨는 다시 부모와 아내, 딸에게 편지를 부쳤다. 근심하지 말라던 편지 속 장담은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다. 그는 1951년 8월 강원 고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에 이은 전쟁은 분단으로 이어지며 꿈 많던 청년들을 혼돈의 삶으로 밀어넣었다. 서울대생 29명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1948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한 고 권석홍 중위는 그해 2월20일 친구 이승한 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엄중한 시국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이며 무엇을 하여야지 된다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니 달고만 한 단꿈에만 잠겨 있을 수가 있으리. … 오늘부터, 아니 지금부터 고루 변화하여 벗들에게 지지 않게 할뿐더러 이 나라의 젊은 자로서 부끄러운 점 없도록 모든 나의 것에 대하여 맹세하나이니.”
권 중위는 전쟁이 터지자 입대했고 뒤이어 미국 육군포병학교에 입교했다. 한국인 1기 수료생으로 미군 포병장교 교범을 번역하고 2기생들을 가르치는 등 교관으로 활약했다. 1952년 전쟁 상황이 악화되자 참전을 결심하고 귀국했다. 그도 1953년 2월 전사했다.
이들에게 편지는 포연 자욱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경제학과 3학년이던 계급 미상의 고 김중만 씨는 전선의 막사에서 아내에게 ‘그리운 사람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 “모두가 그립고 만나고 싶소. … 부디 몸조심하여 그리운 서울서 만납시다. 동생들보고도 나에게 편지하라 하오. 일선에선 소식을 듣는 것만이 낙이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엔 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 걱정이 가득하다. “전번 서신에는 안부가 없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계신지…. 승만이 그 후의 소식은 아시는지 병호 형의 소식도 아시는지 연락하여 주세요. 서울 계시다는 어머님은 어데서 어떻게 보내시는지….” 김씨는 1951년 8월 이름 모를 어느 전장에서 산화했다.
전몰 서울대생, 후배들이 기억하다
6·25전쟁 전몰 서울대생들이 남긴 편지는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며 빛이 바래고 잉크도 희미해졌다. 세대는 세 번 바뀌어 2017년, 서울대 학생들이 6·25전쟁에 참전했다 순국한 동문 선배들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傳記)를 펴낸다. 1960~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열사’들에 대해선 매년 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전몰 동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순국한 동문의 삶을 전기로 남기는 ‘서울대 순국 동문 스토리텔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대가 국가보훈처 주관의 ‘나라사랑 특성화대학’에 선정되면서 올해부터 추진하는 첫 프로젝트다.
전기 작업을 위해 학부생·대학원생으로 구성된 15명가량의 작가단도 모집 중이다. 작가단에 선정된 학생들은 서울대 기록관에 남아 있는 29명의 전몰 동문 중 일대기를 재구성할 만큼의 자료가 있는 7명에 대해 심층 취재에 들어갈 방침이다.
작가단은 7~8월 두 달 동안 유가족, 지인 동문과의 인터뷰를 비롯해 출생지역, 출신학교, 순국지역 현장 취재로 흩어진 조각을 맞춰나간다는 구상이다. 해방 후 한국 상황, 서울대 초창기 역사, 전몰 동문이 참여한 전투를 이해하기 위한 전문가 특강도 듣는다. 그렇게 복원한 그들의 삶은 연말께 한 권의 전기로 엮어 출간할예정이다. 취재 전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하다 학도호국대 장교로 입대한 고(故) 김세환 씨가 6·25전쟁 직후 북한군 포로가 된 자형의 소식을 부인에게 전한 편지글이다. 결혼 5년차이던 그는 전쟁이 나자 아내와 딸을 남기고 군에 지원했다. 함께 있던 자형의 소식을 차마 누이에게 전하지 못하고 아내에게만 알렸다. 비감·그리움·의지로 뒤범벅된 편지
“근심 마십시오. 서울도 탈환되었으니 자형도 돌아가야 할 텐데…. 저는 중부전선이어서 서울 집에도 가보지 못하겠소이다.” 1950년 9월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자 김씨는 다시 부모와 아내, 딸에게 편지를 부쳤다. 근심하지 말라던 편지 속 장담은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다. 그는 1951년 8월 강원 고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에 이은 전쟁은 분단으로 이어지며 꿈 많던 청년들을 혼돈의 삶으로 밀어넣었다. 서울대생 29명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1948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한 고 권석홍 중위는 그해 2월20일 친구 이승한 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엄중한 시국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이며 무엇을 하여야지 된다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니 달고만 한 단꿈에만 잠겨 있을 수가 있으리. … 오늘부터, 아니 지금부터 고루 변화하여 벗들에게 지지 않게 할뿐더러 이 나라의 젊은 자로서 부끄러운 점 없도록 모든 나의 것에 대하여 맹세하나이니.”
권 중위는 전쟁이 터지자 입대했고 뒤이어 미국 육군포병학교에 입교했다. 한국인 1기 수료생으로 미군 포병장교 교범을 번역하고 2기생들을 가르치는 등 교관으로 활약했다. 1952년 전쟁 상황이 악화되자 참전을 결심하고 귀국했다. 그도 1953년 2월 전사했다.
이들에게 편지는 포연 자욱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경제학과 3학년이던 계급 미상의 고 김중만 씨는 전선의 막사에서 아내에게 ‘그리운 사람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냈다. “모두가 그립고 만나고 싶소. … 부디 몸조심하여 그리운 서울서 만납시다. 동생들보고도 나에게 편지하라 하오. 일선에선 소식을 듣는 것만이 낙이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엔 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진 가족 걱정이 가득하다. “전번 서신에는 안부가 없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계신지…. 승만이 그 후의 소식은 아시는지 병호 형의 소식도 아시는지 연락하여 주세요. 서울 계시다는 어머님은 어데서 어떻게 보내시는지….” 김씨는 1951년 8월 이름 모를 어느 전장에서 산화했다.
전몰 서울대생, 후배들이 기억하다
6·25전쟁 전몰 서울대생들이 남긴 편지는 6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며 빛이 바래고 잉크도 희미해졌다. 세대는 세 번 바뀌어 2017년, 서울대 학생들이 6·25전쟁에 참전했다 순국한 동문 선배들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傳記)를 펴낸다. 1960~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열사’들에 대해선 매년 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전몰 동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순국한 동문의 삶을 전기로 남기는 ‘서울대 순국 동문 스토리텔링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대가 국가보훈처 주관의 ‘나라사랑 특성화대학’에 선정되면서 올해부터 추진하는 첫 프로젝트다.
전기 작업을 위해 학부생·대학원생으로 구성된 15명가량의 작가단도 모집 중이다. 작가단에 선정된 학생들은 서울대 기록관에 남아 있는 29명의 전몰 동문 중 일대기를 재구성할 만큼의 자료가 있는 7명에 대해 심층 취재에 들어갈 방침이다.
작가단은 7~8월 두 달 동안 유가족, 지인 동문과의 인터뷰를 비롯해 출생지역, 출신학교, 순국지역 현장 취재로 흩어진 조각을 맞춰나간다는 구상이다. 해방 후 한국 상황, 서울대 초창기 역사, 전몰 동문이 참여한 전투를 이해하기 위한 전문가 특강도 듣는다. 그렇게 복원한 그들의 삶은 연말께 한 권의 전기로 엮어 출간할예정이다. 취재 전 과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