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FROM 100] "정권 바뀌면 연구방향도 흔들…국가 과잉개입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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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FROM 100 - 새 정부에 바란다 : 4차 산업혁명과 국가 R&D 전략
정권마다 R&D 투자 늘려도 프로젝트 중심 지원에 머물러
기초연구도 제대로 안되고 혁신과 창의도 가로막아
정부가 컨트롤타워 맡기보다 혁신 코디네이터 역할만 해야
정권마다 R&D 투자 늘려도 프로젝트 중심 지원에 머물러
기초연구도 제대로 안되고 혁신과 창의도 가로막아
정부가 컨트롤타워 맡기보다 혁신 코디네이터 역할만 해야
“이대로 가면 4차 산업혁명은 실패한다. 연구개발(R&D) 전략을 정비해야 할 때다.”(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 “4차 산업이 잘되려면 멍석부터 깔아줘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이우일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21일 공동 개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의 R&D 전략부터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 방향이 흔들리는 R&D 정책으로는 4차 산업 시대의 핵심 기술을 확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4차 산업혁명과 국가 R&D 전략’을 주제로 열렸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8월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겠다고 밝힌 만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혁신, 컨트롤 말고 코디네이팅 하라”
노무현 정부 때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박기영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의 행정체계 개편을 화두로 던졌다. 박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4차 산업혁명은 R&D 현장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연구력이 폭발해야 4차 산업혁명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연구 성과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국가 혁신 체계를 짜야 하는데 이 역할을 행정체계로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4차 산업혁명 R&D 총괄부처로 키우겠다고 한 데 대해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학기술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코디네이터”라고 했다.
박 교수는 “연구비를 나눠주는 R&D 관리조직 중심의 행정체계는 개발도상국 방식”이라며 “이미 주요 선진국은 과학기술, 연구, 교육, 산업, 경제를 아우르는 대부처주의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호주 과학연구경제부 등 선진국의 과학기술 부처는 경제·사회의 혁신을 이끄는 부처로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도 혁신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신설했다”며 “시스템이 정착하기 전에 이명박 정부에서 사라졌지만 큰 방향은 대부처주의 흐름에 맞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하면 연구 방향 틀어져”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정책도 방향이 바뀌는 탓에 급변하는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중장기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혁신도 가능하다는 조언이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전문위원은 “연구의 단절, 불연속성에서 탈출하는 게 시급하다”며 “역대 정권이 모두 R&D에 베팅했지만 실패한 원인은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국가가 R&D사업에 과잉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기초 연구는 국가가 주도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민간과 국가가 역할 분담을 잘해야 한다”며 “기업, 대학 등 민간부문에서 자발적으로 R&D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현 R&D 체계는 기초연구도 기초답게 안 하고, 기술개발도 개발답게 안 해 어정쩡하다”며 “정부는 혁신 정책을 제대로 펴고 시장은 자발적으로 거품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연구과제 중심의 PBS (project based system) 제도가 중장기 연구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꼽았다. 이우일 교수는 “국내 R&D 지원액이 작은 규모가 아닌데 대부분 PBS 방식으로 지원한다는 게 문제”라며 “정권이 바뀌면 PBS 목적이 바로 바뀌는 탓에 기초연구도 하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R&D 사업은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가는 네트워크 등의 멍석을 깔고 대학 기업 등 각 주체가 마음껏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진수 쿠도커뮤니케이션 부회장도 “연구문화, 기업문화 등 문화를 바꿔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독창적인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의 주체인 기업들이 창의적인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시스템 싹 고쳐야”
R&D 평가 시스템을 고치는 게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연구 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평가인 만큼 평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1차원적이고 이분법적인 평가를 정성 평가와 다차원 방식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학장은 “R&D 성과를 논문 몇 편 등의 지표로 평가하고 대학을 줄 세우고 있다”며 “R&D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1년 단위로 예산을 배분받기 때문에 연구현장은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다”며 “국가 연구기관이 불투명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도록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인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민간 싱크탱크 FROM 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지난 21일 공동 개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의 R&D 전략부터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 방향이 흔들리는 R&D 정책으로는 4차 산업 시대의 핵심 기술을 확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4차 산업혁명과 국가 R&D 전략’을 주제로 열렸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8월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겠다고 밝힌 만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다양한 제언이 쏟아졌다.
◆“혁신, 컨트롤 말고 코디네이팅 하라”
노무현 정부 때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박기영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의 행정체계 개편을 화두로 던졌다. 박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4차 산업혁명은 R&D 현장으로부터 시작된다”며 “연구력이 폭발해야 4차 산업혁명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연구 성과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국가 혁신 체계를 짜야 하는데 이 역할을 행정체계로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4차 산업혁명 R&D 총괄부처로 키우겠다고 한 데 대해선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학기술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코디네이터”라고 했다.
박 교수는 “연구비를 나눠주는 R&D 관리조직 중심의 행정체계는 개발도상국 방식”이라며 “이미 주요 선진국은 과학기술, 연구, 교육, 산업, 경제를 아우르는 대부처주의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호주 과학연구경제부 등 선진국의 과학기술 부처는 경제·사회의 혁신을 이끄는 부처로 자리매김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초창기에도 혁신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신설했다”며 “시스템이 정착하기 전에 이명박 정부에서 사라졌지만 큰 방향은 대부처주의 흐름에 맞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하면 연구 방향 틀어져”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정책도 방향이 바뀌는 탓에 급변하는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중장기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혁신도 가능하다는 조언이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전문위원은 “연구의 단절, 불연속성에서 탈출하는 게 시급하다”며 “역대 정권이 모두 R&D에 베팅했지만 실패한 원인은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국가가 R&D사업에 과잉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기초 연구는 국가가 주도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민간과 국가가 역할 분담을 잘해야 한다”며 “기업, 대학 등 민간부문에서 자발적으로 R&D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현 R&D 체계는 기초연구도 기초답게 안 하고, 기술개발도 개발답게 안 해 어정쩡하다”며 “정부는 혁신 정책을 제대로 펴고 시장은 자발적으로 거품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연구과제 중심의 PBS (project based system) 제도가 중장기 연구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꼽았다. 이우일 교수는 “국내 R&D 지원액이 작은 규모가 아닌데 대부분 PBS 방식으로 지원한다는 게 문제”라며 “정권이 바뀌면 PBS 목적이 바로 바뀌는 탓에 기초연구도 하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R&D 사업은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가는 네트워크 등의 멍석을 깔고 대학 기업 등 각 주체가 마음껏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진수 쿠도커뮤니케이션 부회장도 “연구문화, 기업문화 등 문화를 바꿔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독창적인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의 주체인 기업들이 창의적인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시스템 싹 고쳐야”
R&D 평가 시스템을 고치는 게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연구 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평가인 만큼 평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1차원적이고 이분법적인 평가를 정성 평가와 다차원 방식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학장은 “R&D 성과를 논문 몇 편 등의 지표로 평가하고 대학을 줄 세우고 있다”며 “R&D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1년 단위로 예산을 배분받기 때문에 연구현장은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다”며 “국가 연구기관이 불투명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도록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 FROM 100은
한국 대표 지식인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 싱크탱크다. FROM 100은 미래(future), 위험(risk), 기회(opportunity), 행동(movement)의 머리글자에 100인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의 숫자 100을 붙였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FROM 100 대표) 주도로 2016년 10월 출범했다. 연구력이 왕성한 중견 학자와 신(新)산업 부문 젊은 지식인이 주축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