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영수증 발행에 거래이력제…화랑업계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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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생생 리포트 - 불황에 허덕이는 화랑가
미술품 애호가 상당수 신분노출 꺼려 수집 포기
정부, 화가-고객 직거래 지원 유통시장 혼란 되레 부추겨
해외화랑 진입으로 시장 잠식…경매시장 쏠림도 버거운 짐
미술품 애호가 상당수 신분노출 꺼려 수집 포기
정부, 화가-고객 직거래 지원 유통시장 혼란 되레 부추겨
해외화랑 진입으로 시장 잠식…경매시장 쏠림도 버거운 짐
10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미술인의 작품 전시와 판매, 육성을 지원하는 화랑업계가 사면초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 업종을 갤러리까지 확대하고 그림의 유통 궤적을 추적하는 ‘거래이력제’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작가와 소비자 간 작품 직거래 증가, 경매시장으로만 수요층이 몰리는 ‘쏠림현상’, 해외 화랑들의 잇단 국내 진출 등으로 화랑가에 불어닥친 한파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음성거래 부추겨 유통 혼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거래이력제와 기획재정부가 2019년 1월부터 적용하는 미술품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은 화랑업계에 메가톤급 악재로 부각되고 있다. 고가 미술품 주 수요자인 ‘큰손 컬렉터’의 상당수가 신분 노출을 꺼려 아예 수집을 포기, 시장 위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2013년 미술품 거래에 양도소득세 부가로 한 차례 타격을 받은 국내 미술시장이 더욱 음성화하고 거래도 급감해 문을 닫는 화랑이 속출할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는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과 거래이력제는 미술시장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되는 것과 같은 파장을 낳을 것”이라며 “미술품에 대한 감정평가와 유통시스템이 허술한 상황에서 시행하면 시장이 위축될 뿐 아니라 음성적 거래만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술시장에 빠르게 확산되는 작가와 수요자 간 직거래 역시 화랑업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4월 인터파크씨어터와 ‘2017년 작가 미술장터 개설 지원’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작가들이 기획부터 판매까지 미술품 거래 전 과정에 적극 참여토록 해 장터가 자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지만 유통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영덕 박영덕화랑 대표는 “화랑들이 작가 육성과 프로모션에 기여하는 순기능은 무시하고 그저 창작품을 빼앗아간다는 의식이 작가 사이에 늘고 있는 것 같다”며 “한두 작품 판매에 고무돼 화랑을 통하지 않아도 작품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제살 깎아 먹기”라고 지적했다.
◆해외 화랑의 잇단 서울 입성
‘몸집’을 키우고 있는 미국 유럽 등지 유명 화랑들이 한국 시장에 눈을 돌리는 점도 위기 요인이다. 프랑스 유명 화랑인 페로탱갤러리와 미국 중국 등 다국적 갤러리 ‘스페이스칸(Space KAAN)’이 지난해 서울에 지점을 낸 데 이어 미국 뉴욕 메이저 화랑 페이스갤러리도 지난 3월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해외 인기작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들여와 기존 컬렉터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 ‘몸값’이 높아진 단색화 작가를 잡고 미국 유럽 미술품을 사들이는 국내 컬렉터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게 화랑업계의 설명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의 시장 독식도 버거운 도전이다. 2007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경매회사 간 경쟁이 불붙고 있어 경력 10년도 안 된 젊은 작가, 중저가 작품까지 경매에 부쳐지는 현실이다.
김윤섭 한국경영연구소장은 “미술품 거래 1차 시장을 책임지는 화랑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바로 세워 작가와 화랑이 상생하는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며 “미술가에 무한 책임을 갖는 화랑들이 문을 닫으면 작가는 전시공간과 판매, 육성을 위한 플랫폼을 찾지 못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여러 악재가 쏟아질수록 화랑업계의 체질 개선이 더욱 필요하다는 고언도 있다. 이원희 화백은 “합리적인 가격 구조 정착, 작가 발굴·육성,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예술의 사회적 기능 제고 등 화랑 문화의 개혁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화랑은
국내 화랑의 효시는 1956년 반도호텔(현재 롯데호텔 자리) 안에 주한 외국인 부인들이 세운 반도화랑이다. 1959년 서양화가 이대원이 이 화랑의 운영권을 맡은 이후 유명세를 떨쳤다. 1970년 현대화랑 개관을 시작으로 국제갤러리, 가나아트센터, 조선화랑, 진화랑, 동산방화랑, 노화랑 등이 잇달아 문을 열면서 미술품 유통업이 본격화됐다. 전국에선 420여개의 상업 화랑이 성업 중이다. 관련 시장은 연간 2400억원대 규모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음성거래 부추겨 유통 혼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 중인 거래이력제와 기획재정부가 2019년 1월부터 적용하는 미술품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은 화랑업계에 메가톤급 악재로 부각되고 있다. 고가 미술품 주 수요자인 ‘큰손 컬렉터’의 상당수가 신분 노출을 꺼려 아예 수집을 포기, 시장 위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2013년 미술품 거래에 양도소득세 부가로 한 차례 타격을 받은 국내 미술시장이 더욱 음성화하고 거래도 급감해 문을 닫는 화랑이 속출할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는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과 거래이력제는 미술시장에 거래 실명제가 도입되는 것과 같은 파장을 낳을 것”이라며 “미술품에 대한 감정평가와 유통시스템이 허술한 상황에서 시행하면 시장이 위축될 뿐 아니라 음성적 거래만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술시장에 빠르게 확산되는 작가와 수요자 간 직거래 역시 화랑업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4월 인터파크씨어터와 ‘2017년 작가 미술장터 개설 지원’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작가들이 기획부터 판매까지 미술품 거래 전 과정에 적극 참여토록 해 장터가 자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지만 유통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박영덕 박영덕화랑 대표는 “화랑들이 작가 육성과 프로모션에 기여하는 순기능은 무시하고 그저 창작품을 빼앗아간다는 의식이 작가 사이에 늘고 있는 것 같다”며 “한두 작품 판매에 고무돼 화랑을 통하지 않아도 작품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제살 깎아 먹기”라고 지적했다.
◆해외 화랑의 잇단 서울 입성
‘몸집’을 키우고 있는 미국 유럽 등지 유명 화랑들이 한국 시장에 눈을 돌리는 점도 위기 요인이다. 프랑스 유명 화랑인 페로탱갤러리와 미국 중국 등 다국적 갤러리 ‘스페이스칸(Space KAAN)’이 지난해 서울에 지점을 낸 데 이어 미국 뉴욕 메이저 화랑 페이스갤러리도 지난 3월 서울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해외 인기작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들여와 기존 컬렉터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 ‘몸값’이 높아진 단색화 작가를 잡고 미국 유럽 미술품을 사들이는 국내 컬렉터를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게 화랑업계의 설명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의 시장 독식도 버거운 도전이다. 2007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경매회사 간 경쟁이 불붙고 있어 경력 10년도 안 된 젊은 작가, 중저가 작품까지 경매에 부쳐지는 현실이다.
김윤섭 한국경영연구소장은 “미술품 거래 1차 시장을 책임지는 화랑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바로 세워 작가와 화랑이 상생하는 구조를 재정립해야 한다”며 “미술가에 무한 책임을 갖는 화랑들이 문을 닫으면 작가는 전시공간과 판매, 육성을 위한 플랫폼을 찾지 못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여러 악재가 쏟아질수록 화랑업계의 체질 개선이 더욱 필요하다는 고언도 있다. 이원희 화백은 “합리적인 가격 구조 정착, 작가 발굴·육성,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예술의 사회적 기능 제고 등 화랑 문화의 개혁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화랑은
국내 화랑의 효시는 1956년 반도호텔(현재 롯데호텔 자리) 안에 주한 외국인 부인들이 세운 반도화랑이다. 1959년 서양화가 이대원이 이 화랑의 운영권을 맡은 이후 유명세를 떨쳤다. 1970년 현대화랑 개관을 시작으로 국제갤러리, 가나아트센터, 조선화랑, 진화랑, 동산방화랑, 노화랑 등이 잇달아 문을 열면서 미술품 유통업이 본격화됐다. 전국에선 420여개의 상업 화랑이 성업 중이다. 관련 시장은 연간 2400억원대 규모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