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생각 달라도 맞다 싶으면 도전하라"…이것이 '미래에셋 DNA'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미래에셋 20년 탐구 (1) 박현주의 '역발상' 리더십
지난 16일 오후 강원 홍천 블루마운틴컨트리클럽(CC). 클럽하우스 한쪽에 마련된 방에 박현주 회장 등 미래에셋금융그룹 경영진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각 계열사 사외이사들이 속속 들어섰다. 그룹 창립 20주년(7월1일)을 앞두고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자축하는 자리였다.
술이 한 순배 돌자 박 회장이 입을 뗐다. “김 위원장님(당시 재정경제부 증권제도 과장), 기억하세요? 제가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인가를 받으러 갔을 때 ‘우리 자본시장의 미래는 당신 같은 젊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죠. 그 말씀 새겨듣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박 회장은 눈물을 떨궈내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참석자는 “미래에셋 20년 역사는 박현주의 도전사와 궤를 같이한다”며 “지난 20년간 벌어진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이 한순간에 떠오르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설립 20년 만에 국내 1위 금융투자그룹으로 도약하게 된 비결을 박 회장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시장을 꿰뚫어보는 직관력, 믿는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용인술, 맞다 싶으면 밀어붙이는 도전정신이 성공 스토리를 써냈다는 얘기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
박현주 리더십의 핵심은 ‘차별화’다. 미래에셋에 유난히 ‘최초’ 기록이 많은 이유다. 그가 세운 미래에셋투자자문은 국내 최초 전문 자산운용사다. 폐쇄형 뮤추얼펀드, 개방형 뮤추얼펀드, 랩 어카운트, 해외 투자 인프라펀드, 원유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미국 부동산 공모펀드 등 국내에 처음 선보인 상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박현주식 차별화’의 핵심을 ‘단순화’에서 찾는다. 1999년 사들인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은 외환위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300포인트 수준까지 떨어지자 24억원을 들여 다음 주식을 샀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주가가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처음 겪는 증시 붕괴에 몸을 움츠린 다른 기관투자가와 달리 박 회장은 위기를 절호의 투자 기회로 봤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한국 증시는 이내 회복했고 수년 뒤 미래에셋캐피탈은 다음 매각대금으로 1200억원을 거머쥐었다. 미래에셋은 이런 식으로 한국정보공학, 현대정보기술, 가로수닷컴, 부동산114 등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2005년 SK생명을 인수하며 생명보험업에 진출한 이유도 남달랐다. 박 회장은 “보험업은 자산운용업이다. 그래서 성장산업이다”라고 정의했다. 보험사는 고객이 낸 보험료를 운용해 보험금으로 되돌려줘야 하는 만큼 보수적으로 돈을 굴려야 한다는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발상이었다.
박 회장은 특유의 직관력을 키운 힘으로 ‘글 읽기’를 꼽는다. 아이패드에 각종 자료를 내려받아 놓고 틈틈이 읽는다. 1년에 읽는 영문 보고서만 50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박 회장은 “미래학 서적을 읽고 주변을 잘 관찰하면 장기적인 흐름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일의 금액》(마크 파버 지음)과 《세계는 평평하다》(토머스 프리드먼 지음)는 임원들에게 일독을 권한 책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2006년 중국 상하이 푸둥타워(현 미래에셋타워)를 인수할 때다. 거의 모든 임직원이 드러내놓고 반대했다.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 수익률이 연 7~8%인데 왜 연 5%짜리 해외 부동산을 사느냐”는 논리였다. 여기에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해외 투자의 불확실성 등이 더해졌다. 중국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누구도 상하이에 있는 36층짜리 빌딩을 사자고 주장하지 못했다. 2600억원짜리 푸둥빌딩은 당시 미래에셋증권이 섣불리 사들일 만한 규모도 아니었다.
박 회장이 푸둥타워 인수를 밀어붙인 근거는 ‘36%’란 숫자였다. 당시 상하이의 도시화율(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이었다. 서울 등 세계 주요 대도시의 도시화율이 9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상하이의 도시화율이 높아지는 건 기정사실인 만큼 번화가 랜드마크에 입주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건물의 현재 가치는 매입가의 6배에 육박하는 1조5000억원에 이른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박 회장의 도전은 이어졌다. 2011년 미래에셋프라이빗에쿼티(PE)를 통해 글로벌 1위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미국 아쿠쉬네트를 인수할 때나 2015년 국내 1위 증권사인 대우증권을 손에 넣을 때도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이 창업 때부터 강조한 차별화와 도전정신은 이제 미래에셋금융그룹의 DNA가 됐다”고 했다.
정영효/홍윤정 기자 hugh@hankyung.com
술이 한 순배 돌자 박 회장이 입을 뗐다. “김 위원장님(당시 재정경제부 증권제도 과장), 기억하세요? 제가 1999년 미래에셋증권 설립 인가를 받으러 갔을 때 ‘우리 자본시장의 미래는 당신 같은 젊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죠. 그 말씀 새겨듣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박 회장은 눈물을 떨궈내느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참석자는 “미래에셋 20년 역사는 박현주의 도전사와 궤를 같이한다”며 “지난 20년간 벌어진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이 한순간에 떠오르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설립 20년 만에 국내 1위 금융투자그룹으로 도약하게 된 비결을 박 회장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시장을 꿰뚫어보는 직관력, 믿는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용인술, 맞다 싶으면 밀어붙이는 도전정신이 성공 스토리를 써냈다는 얘기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
박현주 리더십의 핵심은 ‘차별화’다. 미래에셋에 유난히 ‘최초’ 기록이 많은 이유다. 그가 세운 미래에셋투자자문은 국내 최초 전문 자산운용사다. 폐쇄형 뮤추얼펀드, 개방형 뮤추얼펀드, 랩 어카운트, 해외 투자 인프라펀드, 원유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미국 부동산 공모펀드 등 국내에 처음 선보인 상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박현주식 차별화’의 핵심을 ‘단순화’에서 찾는다. 1999년 사들인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은 외환위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300포인트 수준까지 떨어지자 24억원을 들여 다음 주식을 샀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주가가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처음 겪는 증시 붕괴에 몸을 움츠린 다른 기관투자가와 달리 박 회장은 위기를 절호의 투자 기회로 봤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한국 증시는 이내 회복했고 수년 뒤 미래에셋캐피탈은 다음 매각대금으로 1200억원을 거머쥐었다. 미래에셋은 이런 식으로 한국정보공학, 현대정보기술, 가로수닷컴, 부동산114 등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렸다.
2005년 SK생명을 인수하며 생명보험업에 진출한 이유도 남달랐다. 박 회장은 “보험업은 자산운용업이다. 그래서 성장산업이다”라고 정의했다. 보험사는 고객이 낸 보험료를 운용해 보험금으로 되돌려줘야 하는 만큼 보수적으로 돈을 굴려야 한다는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발상이었다.
박 회장은 특유의 직관력을 키운 힘으로 ‘글 읽기’를 꼽는다. 아이패드에 각종 자료를 내려받아 놓고 틈틈이 읽는다. 1년에 읽는 영문 보고서만 50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박 회장은 “미래학 서적을 읽고 주변을 잘 관찰하면 장기적인 흐름에 대한 답이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내일의 금액》(마크 파버 지음)과 《세계는 평평하다》(토머스 프리드먼 지음)는 임원들에게 일독을 권한 책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2006년 중국 상하이 푸둥타워(현 미래에셋타워)를 인수할 때다. 거의 모든 임직원이 드러내놓고 반대했다.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 수익률이 연 7~8%인데 왜 연 5%짜리 해외 부동산을 사느냐”는 논리였다. 여기에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해외 투자의 불확실성 등이 더해졌다. 중국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누구도 상하이에 있는 36층짜리 빌딩을 사자고 주장하지 못했다. 2600억원짜리 푸둥빌딩은 당시 미래에셋증권이 섣불리 사들일 만한 규모도 아니었다.
박 회장이 푸둥타워 인수를 밀어붙인 근거는 ‘36%’란 숫자였다. 당시 상하이의 도시화율(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이었다. 서울 등 세계 주요 대도시의 도시화율이 9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상하이의 도시화율이 높아지는 건 기정사실인 만큼 번화가 랜드마크에 입주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건물의 현재 가치는 매입가의 6배에 육박하는 1조5000억원에 이른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박 회장의 도전은 이어졌다. 2011년 미래에셋프라이빗에쿼티(PE)를 통해 글로벌 1위 골프공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미국 아쿠쉬네트를 인수할 때나 2015년 국내 1위 증권사인 대우증권을 손에 넣을 때도 박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박 회장이 창업 때부터 강조한 차별화와 도전정신은 이제 미래에셋금융그룹의 DNA가 됐다”고 했다.
정영효/홍윤정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