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정치선임기자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우리 정치가 과거의 ‘대결 정치 프레임’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독주하고, 여당은 대통령 눈치 보기에 급급한 가운데 야당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과거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주하는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약속한 ‘고위 공직자 임용 배제 5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사과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내세워 야당의 양해를 구한 ‘해명성 설명’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을 유발하며 사태를 더 키웠다.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이 ‘협치 파기’라며 반대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강 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많다는 게 명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장관 임명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고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는 참고사항”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반대에 개의치 않겠다는 의미다.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여소야대 정국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여론정치’를 공식화한 것이다. “야당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이 무색해졌다. 야당과의 협치는 더 멀어졌다.

◆침묵하는 여당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여당 내에서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 논리를 옹호하며 야당의 공세에 방어벽을 치는데 치중하고 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싸늘한 상황에서도 임명 철회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마저 반대하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감싸기에 급급했다. 과거 여당이었던 한국당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 한 중진의원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여당이 대통령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인사에 문제가 있더라도 결국 대통령이 결자해지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민주당이 청와대 감싸기에 나서면서 청(靑)-야(野)의 대립각이 심화하고 있다.

◆도 넘은 야당 반대

야당의 반대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은 당초 야 3당이 반대한 강 장관은 물론 이낙연 총리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에도 반대했다.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법 심의도 거부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강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3일간 국회 의사일정을 거부했다. 27일부터 추경안 심의를 제외한 국회 일정에 참여하고 있다. 비판여론을 의식해 반쪽짜리 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야 3당이 ‘부적격 3종세트’라며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송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중 일부 후보의 낙마가 이뤄지지 않는 한 추경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인사문제와 추경을 연계하는 전략이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