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발상 자체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역주민의 반발, 전문가의 반대, 줄소송 우려에 직면한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내세워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최대 3개월간 여론수렴을 거쳐 시민배심원단이 판단을 내리게 하겠다는 방침도 그렇다. 탈(脫)원전에 대한 공론화에만 독일은 25년, 스위스는 3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오로지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탈원전을 선언하고 3개월 안에 건설 중인 원전의 영구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니 ‘졸속’ 논란을 면키 어렵다. 영구중단되면 2조6000억원에 달한다는 매몰비용과 각종 소송비용은 모두 납세자의 몫이다. 여기에 몇십 년 뒤 전력수급 문제라도 터지면 결국 국민이 최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일본은 원전 재가동 허용에 이어 신·증설까지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다. 여론만을 좇기로 했다면 나올 수 없는 결정이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전문가적 판단을 중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책 한 권 읽었을 땐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지식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고 전문가적 수준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판단능력이 생긴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원전도 예외일 수 없다. 선택된 대안들에 대한 계몽된 지식이 충만할 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포퓰리즘이 아닌, 과학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이유다.
후폭풍이 걱정이다. 이런 식이면 여론에 맡기지 못할 정책이 없다. 정부 지지율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전문가와 지식인집단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걸 여론으로 결정할 바엔 뭐 하러 정부가 존재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