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차 산업혁명, 'P-테크 학교' 활성화해야
지난해 11월 지니 로메티 IBM 회장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에게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춘 실무자를 양성하기 위해 이론과 실무 교육을 병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미국 전역에 100여 곳 만들겠으니 정부에서 도와달라”는 서한을 보내 많은 화제를 낳았다. 로메티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움직일 새로운 세대를 키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힘을 합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도 지난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새 정부는 이에 대비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고 기업 역시 4차 산업혁명을 수용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역량을 지닌 인재를 요구하는지, 현재 인재들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제도적 장치는 무엇일지 등 그 중심에 놓인 교육 문제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기업의 비즈니스 형태가 바뀌면서 인간이 하던 많은 작업이 자동화되고, 이 기술들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세상에서는 현재의 블루칼라(생산직 등 노동자)와 화이트칼라(전문 사무직) 외에 ‘뉴칼라’ 계층의 등장이 예고된다. 뉴칼라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사이버보안 전문가 등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를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전통적 교육의 최우선 순위인 4년제 대학 학위가 아니라 이런 기술을 다루는 데 필수적인 STEM(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STEM은 4차 산업혁명의 성장동력으로, 미래에 새로 창출되는 직업 대다수가 이에 기반을 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교육부는 2020년까지 STEM 분야 일자리가 14%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생명공학 62%, 의료과학 36%, 소프트웨어 개발 32%, 컴퓨터 시스템 분석 22%, 수학 16% 등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는데, 연말까지 STEM 분야 일자리가 13%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보시스템 운영자 40%, 컴퓨터·통신 분야 27%, 생명·자연과학 54% 등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전망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무엇보다도 뉴칼라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과과정도 기초이론부터 실무교육은 물론, 인턴십 과정까지 이뤄져야 한다. 학교는 학생이 곧장 현장에 투입됐을 때도 일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교과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예로 IBM은 미국 정부와 손잡고 ‘새로운 직업경로(pathway)’를 뜻하는 ‘P-테크 학교’를 운영한다. 6년제 P-테크 학교를 졸업하면, IT 관련 분야에서 준학사 학위(2년제 대학 졸업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P-테크 학교는 기업, 교육기관 등과 협업을 통한 교육이 이뤄지며 유급 인턴십과 채용 시 우대 등이 지원된다. P-테크 학교의 또 다른 장점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외되기 쉬운 계층에 우선권을 준다는 것이다.

P-테크 학교는 기업이 갖고 있는 기술과 인프라를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정부는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사례를 보여준다. 일부에서는 AI나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교육이나 인재 양성과 같이 변화를 활용해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자 하는 관심과 실질적인 행동이다.

장화진 < 한국IBM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