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우다드 지음 / 정유진 옮김/ 글항아리 / 504쪽│2만4000원
11개 '지역 국민'으로 된 연방국
정치·인종·신앙 등으로 나뉘어 '분열증' 걸린 미국의 미래 그려
미국 남북의 이런 차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은 물론 남북전쟁과 그 후의 금주법 제정, 여성참정권 허용, 사회개혁, 자유주의 신학, 흑인의 민권운동, 1960년대의 문화혁명, 환경문제 등 다른 현안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
《분열하는 제국》을 쓴 작가이자 역사가인 콜린 우다드는 이런 사례들을 보여주며 “미국은 결코 하나였던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의 식민지 시절 북미로 이주해온 초기 정착민들은 영국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스페인인 등으로 다양했다. 민족, 종교, 정치적 특성도 모두 달랐다. 그들은 땅과 정착민,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사이였고, 때로는 서로를 적으로 여겼다. 저자가 “미국의 지도자들이 위기 때마다 들먹이는 ‘미국적 가치’ ‘원형적 공동가치’는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11개 ‘지역 국민’의 전체 혹은 일부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11개 지역은 현재의 국경선이나 주 경계선 대신 북미로 유입될 당시의 출신 국가, 종교, 지향점 등을 토대로 분류한 결과다. 양키덤, 뉴네덜란드, 타이드워터, 디프사우스, 뉴프랑스, 미들랜드, 그레이트 애팔래치아, 파웨스트, 엘 노르테, 레프트코스트, 퍼스트 네이션(알래스카와 그린란드) 등이다. 지역 국민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연방을 형성하기 전까지 이들 지역이 별개의 국가처럼 움직였고, 지금도 그런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다.
매사추세츠만 해안의 양키덤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한 유토피아를 세우겠다며 정착한 영국의 칼뱅주의자들이 건설했다. 양키 정착민은 대부분 중산층이었고. 교육 수준이 높았다. 이들은 특권의 대물림이나 과시적 부를 거부했고,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의 전통이 양키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뉴네덜란드는 개방성과 진취성을 앞세운 네덜란드인들이 정착한 땅이다.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은 이질적인 민족과 종교가 뒤섞이고 물질만능주의와 결코 침해받지 않는 자유가 보장된 곳이었다. 미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다양성과 관용, 계층 이동, 민간기업 중시 등은 뉴네덜란드가 남긴 유산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밴쿠버 등이 속한 레프트코스트는 진보적이다. 뉴잉글랜드에서 온 상인, 선교사, 벌목꾼 무리와 그레이터애팔래치아 출신 농부, 채굴꾼 등이 개척한 땅이다. 이곳은 지성주의와 이성주의가 강하고, 사회개혁을 추구한다. 근대적 환경운동과 1960년대 문화혁명의 출발점이 여기였다.
반면 버지니아 저지대와 메릴랜드, 델라웨어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동북부에 개척한 타이드워터는 지주들의 세상이다. 영국 남부 귀족의 자제들인 젠트리 후손들이 개척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저지대와 조지아, 미시시피, 앨라배마 저지대, 루이지애나 삼각주, 텍사스 동부, 아칸소, 테네시 서부, 플로리다 북부에 걸친 디프사우스의 개척자는 노예농장 소유주들이었다. 노예를 동원해 서인도제도 바베이도스에서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다 북미에 진출한 이들은 고대 노예국가를 모델로 삼았고, 북미에서 가장 반민주적인 체제를 만들었다. 1861년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주역이다.
퀘이커 교도들이 건설한 미들랜드는 미국 정치의 흐름을 점치는 풍향계였다. 노예제 폐지부터 최근의 대선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달군 모든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부동층의 표밭이었다.
연방이라는 우산 아래에 있지만 개별 국가처럼 각 지역의 성격 차이가 뚜렷한 미국의 이런 특징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이런 특성이 반영됐다고 한다. 양키덤과 레프트코스트, 뉴네덜란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디프사우스와 그레이터 애팔래치아는 부자 감세를 약속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렇게 제각각인 미국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로 존속해왔을까. 각 지역의 이해와 특성, 요구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연방의 기본원칙, 즉 헌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