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여름방학에 수능 말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해보려고 상담 신청했어요. 지금부터 2년 동안 준비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지난 28일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에서 만난 고3 수험생 윤석현 씨(가명·18)는 얼마 전 치른 수능 모의평가 결과를 보고 대입 준비를 포기했다고 했다. 대신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상담차 학원에 들른 윤 씨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다고 하니 차라리 지금부터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씨는 9급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다. 여러 직렬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기 때문이다. 교정직 응시 가능 연령은 만20세 이상. 만18세인 그는 2년가량 공부해 교정직 9급에 도전할 계획이다. 함께 자리한 윤 씨의 어머니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며 업무 내용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노량진이 북적이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공약한 정부가 공무원 채용 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새내기 공시족'이 학원가를 찾고 있어서다. 이 같은 인기를 반영하듯 노량진 학원들은 상담 예약 일정이 빽빽이 들어찼다.
[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네가 봐야 할 한국사 기본서야. 이걸 사면 돼." 학원 인근 서점에서도 새내기 공시족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책장에서 수험서 한 권을 집어들었다. 이미 한 가득 수험서를 챙겨든 친구에게 건넸다.

기자가 그에게 다가가 사정을 물었더니 "지난주 대전에서 상경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휴학생 신분으로 갓 공부방 계약을 마치고 학원 등록을 한 참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경찰공무원 채용 확대 계획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시작한다고 전했다.

점심 시간이 되자 '컵밥 거리'에 공시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간편한 일상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10분 남짓 동안 서둘러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지하의 고시식당에도 공시생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시끌벅적 친구들과 잡담하며 식사를 하는 대학가 학생식당과 달리 대부분 조용히 '혼밥' 하는 모습이었다.
[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인근 화장품 가게에서도 초조한 표정의 남자 수험생을 만났다. 얼굴에 밴드를 붙인 채 한참 가게 점원과 상담한 그는 화장품 두 개를 골라들었다. 최근 9급 필기시험에 합격해 다음 달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이 수험생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여드름 자국을 없애는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학원 안은 침묵 속에 긴장감이 돌았다. 수강생 200명이 넘는 대형 강의실에서는 강의하는 강사의 목소리와 책에 얼굴을 파묻은 학생들의 필기 소리만 들렸다. 간간히 학원 상담 소리가 섞였다.
[현장+] 고3도 "수능 대신 공시 준비"…'새내기 공시족' 북적이는 노량진
공시생들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만 2000여 명으로 추산된 청년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39.3%)이 공시생이었다. 대학생과 취준생 외에도 직장인, 자영업자에 고등학생까지 공시족 대열에 합류한 탓이다.

그러나 목표한 공무원이 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별반 차이 없다. 지난해 국가직 공무원 채용 시험별 합격률은 외교관 후보자 시험 3.2%, 9급 1.9%, 7급 1.4%, 5급 2.3%이었다. 총 30만5000여 명 응시에 합격자는 5372명, 평균 합격률은 1.8%에 그쳤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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