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대법원의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 유죄 판결을 불과 1주일 만에 또다시 뒤집었다. 이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대법원의 유죄 논리들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대법원이 “소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법이 처벌 예외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하면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을 위배한다”는 식이다.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어서 법원 내부에서도 ‘항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을 판사의 ‘개인 소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점도 그렇거니와 ‘일회성’으로 지나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은 33건이다. 이 중 절반인 16건이 올 상반기에 쏟아졌다. 대법원이 올 들어서만 13번이나 관련 사건을 유죄 확정하는 등 ‘쐐기’를 박으려 했지만 하급심이 계속 뒤집는 모양새다.

잇단 무죄 판결은 특정 성향 판사들이 주도했고, 이들이 ‘사법개혁’을 내걸고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소집 등을 이끈 판사 상당수는 자칭 진보를 표방하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전신인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자신들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사법부를 조직적으로 흔들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판사들의 편향된 정치적 성향과 집단 행동은 법원 외부에서도 이미 우려할 정도다. 지난 19일 열렸던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서 수차례 발언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모 판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태극기 집회와 대기업 경영자를 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들이 조만간 상설화될 ‘전국법관회의’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면 사법부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한 ‘판사 노조’ 가 등장할 것이라는 걱정이 기우(杞憂)는 아니다. 공식 조직까지 장악하면 판결이 영향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재판의 독립, 사법부 독립이라는 법치주의 원칙이 일부 판사들에 의해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