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연례 추경예산도 적폐 아닌가
추가경정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추경은 긴급하면서도 중대한 재정 수요에 대응하는 예외 조치다. 예측할 수 없던 예산 외(外) 또는 초과 지출에 대비해 계상해둔 예비비와는 또 다르다. 따라서 국가재정법(89조)은 전쟁, 큰 재해,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등 중대한 변화에 처한 경우에만 추경 편성을 허용한다. 잦은 추경으로 인한 방만한 재정 운용을 막기 위함이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추경은 18차례나 편성됐다. 김대중 정부 여덟 차례, 노무현 정부 다섯 차례, 이명박 정부 두 차례,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 세 차례였다. 2006년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빈도가 줄었지만, 그동안 연례행사처럼 추경이 편성됐고 이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법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일자리 추경’도 엄격히 따지면 법적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최근 잇달아 경제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만큼 추경이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보다는 거꾸로 증폭시킬 우려마저 있다. 물론 거시경제 지표만큼 서민 체감경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청년 눈높이에 걸맞은 일자리 창출이 미흡해 ‘일하지 않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이 늘어나는 추세라서 걱정이다.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 완화는 이번 추경안의 절대명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청년취업난 악화는 추경으로 대처할 경기 요인보다는 오랫동안 쌓인 구조적 요인과 여건 변화의 추세 요인이 주범이다. 주목할 점은 한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 하락 추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대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겨우 1.0%로 1972년 이후 2.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2011~2014년 41개 중분류 업종 가운데 21개 업종은 생산성이 하락했다. 이에 따라 한계기업 비중은 2011년 9.4%에서 2015년 12.7%로 급증했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생산성 향상과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힘써야 한다. 2015년 OECD 4위에 이른 규제 수준을 선진국 표준에 맞춰 완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특히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와 지원 차별화는 투자와 성장 유인을 떨어뜨리므로 기업 생애주기별로 재편해야 한다. 자격·면허를 비롯해 기득권에 갇힌 서비스산업의 문턱과 울타리를 낮춰 신산업이 태동할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일하는 방식과 규범도 주문형 서비스와 ‘독립형 일자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갱신해 나가야 한다. 특히 임금체계의 연공급 비중을 낮추고 고용 경직성을 완화하는 노동개혁은 청년 일자리 창출의 지름길이다.

청년실업률이 2012년 7.5%에서 2016년 9.8%로 급등한 것은 2013년 4월 기존 취업자의 정년만 늘리고 이런 개혁을 소홀히 해 기업의 고용 여력이 약해진 탓이 크다. 그런데도 시대 흐름을 거슬러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백지화한 새 정부의 조치는 청년 구직난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추경이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지 않는 ‘빚 없는 추경’이라고 강조한다. 정말 그런가. 추경 재원 11조2000억원은 지난해 세계잉여금, 올해 예상 초과 세수와 기금 여유 재원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추경을 편성하지 않으면 이들 재원을 만성 재정적자와 증가 일변도의 국가채무 감축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회계 원칙에 따라 추경이 있을 때(with)와 없을 때(without)를 비교하면 추경으로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나라 빚은 더 늘어나는 셈이다.

더욱이 이번 추경에는 초과 세수 예상분으로 지방교부세는 증액하면서도 지난해 추경과 달리 국가채무를 상환하는 계획이 빠져 있다. 그 결과 초과 세수와 세계잉여금 용도(지방교부금 정산, 공적자금과 국가채무 상환 등)의 우선순위를 설정한 국가재정법(90조)의 취지도 빛이 바랬다.

요컨대 이번 추경은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려가 허술하다. 이런 연례 추경도 적폐가 아닐까. 그래도 굳이 추경을 추진하려면 공무원 증원 등의 대증요법과 날림 사업들을 빼고, 일자리 구조개혁을 뒷받침하는 사업들을 알맹이로 삼았으면 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