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동 한 그릇'에 담긴 배려와 따뜻함
섣달 그믐날 밤 10시. 우동전문점 ‘북해정’의 주인 부부가 가게 문을 닫으려는 차에 사내아이 둘과 한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머뭇거리며 “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다. 여주인은 반갑게 세 사람을 난로 곁 2번 테이블로 안내한다.

여주인이 조용히 “여보, 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하자, 남편은 “그렇게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거요”라며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우동 한 그릇을 비우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주인 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목청을 돋워 인사한다.

그렇게 몇 해, 다시 섣달 그믐날 밤 북해정을 찾은 세 모자는 여느 해와 달리 우동 2인분을 시킨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빚을 갚아온 사연 등 우동 두 그릇을 먹기까지의 사연이 국물만큼 뜨겁다. 카운터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주인 부부는 이후 십수 년 동안 ‘2번 테이블’을 치우지 않았다. 이 따뜻한 이야기는 북해정을 찾는 이들에게 우동가락처럼 이어졌고, 훗날 두 사내아이는 의사와 은행원이 돼 북해정을 다시 찾는다.

구리 료헤이 원작의 일본 동화 《우동 한 그릇》의 이야기다. 1989년 일본 의회 질문 도중에 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난데없이 꺼내 읽으면서 그날 의회는 물론 일본 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야기다. 필자는 1990년대 초쯤 도쿄 아시아경제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일본인 동료가 건네 이 동화를 만났다.

30분이면 다 읽는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문 닫을 시간에 찾아온 가난하고 초라한 세 모자를 반갑게 맞는 북해정 주인 부부의 정성, 우동 세 덩이가 불편할까 한 덩이 반만 넣는 따뜻한 배려, 십수 년간 테이블에 ‘예약석’ 팻말을 놓아두는 인연의 소중함,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을 끝까지 갚는 ‘우동 한 그릇’의 책임정신이 녹아 있다.

인생을 살면서 매사, 매 순간 정성을 다하기는 어렵다. 이면을 헤아리고 처지를 배려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한 그릇의 우동을 셋이 먹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지난 20여 년 넘는 시간 나는 매년 정초가 되면 《우동 한 그릇》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습관이 생겼고, 만나는 인연마다 이 책을 나눠주는 일이 습관이 됐다.

이미 일상이 돼버린 경제위기와 혼돈의 정치 환경 속에서 내가 부은 ‘정성과 배려’는 과연 우동 몇 그릇이나 될까, 눈을 감아 본다.

김광림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glkim@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