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본 박 부회장은 화학산업은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7년 국내 최초 화장품 ‘럭키크림’을 출시한 구인회 LG 창업주는 ‘깨지지 않는 화장품 뚜껑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했다. 따지고 보면 전기자동차도, 스마트폰도, 우주선도 모두 화학산업의 토대 위에서 개발된 것이었다.
리먼 쇼크,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박 부회장은 LG화학 70년 역사의 절반 이상인 40년을 이 회사에서 보냈다. 1970년 인천 제물포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과라는 말에 덜컥 지망한 것이 평생 한 우물을 파는 계기가 됐다.
1977년 (주)럭키 프로젝트실에 입사하자 여수공장으로 발령받았다. 근무지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공사 현장이었다. 선배들과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곳을 누비며 공장을 지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장차 석유화학산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긍심이 있었습니다.”
40년 중 16년을 여수공장에서 보냈다. 1980년대 초 그가 여수공장에서 생산과장으로 재직할 때 일이다. 플라스틱 원료 중 하나인 폴리스티렌(PS) 생산 라인을 기존의 배치공정(Batch 공정·전기밥솥처럼 원료 투입과 제품 생산 과정을 한 번씩 끊어서 생산하는 공정)에서 난도가 높은 연속 공정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처음 적용하는 공정인 만큼 공장도 새로 지었다. 문제는 시운전 때 생겼다. 생산 문제가 발생하면서 배관 곳곳이 플라스틱 덩어리로 꽉 막혀버린 것. 일본 기술고문들은 “재가동까지 6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며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떻게든 공장을 돌려야 했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책상 고무판 밑에 사직서를 넣어뒀다. 현장에 야전침대를 마련하고 몇 주 동안 밤새 현장을 지켰다. 6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던 기술고문들의 말과 달리 생산 라인은 3주 만에 재가동됐다. 박 부회장은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기술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라며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저와 회사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는 목표의식이 강했고 실행 능력도 뛰어나 상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 공적은 2002년 ABS/PS 사업부장을 맡아 고부가합성수지(ABS)를 세계 1등으로 키운 것이다. 자동차, 정보기술(IT)산업에 주로 쓰이는 고기능성 소재인 만큼 수익성도 좋았다. 2004년엔 LG화학이 인수한 현대석유화학의 공동대표를 맡아 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어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에 취임해 나프타분해설비(NCC) 공장을 아시아 3위 규모로 키웠다.
하지만 당시 기술력에 비해 해외 시장에서 LG화학의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해외 고객들로부터 “다우케미칼, 바스프(BASF)가 있는데 왜 LG화학에 맡기겠느냐”는 직설적인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이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을 맡았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다우케미칼, 바스프 등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해외 공장을 줄줄이 중단했다. 공급이 끊긴 고객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모든 기업이 힘든 시기였지만 LG화학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공장을 열심히 돌리며 구원투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투자도 공격적으로 늘렸다. LG화학에 대한 해외 고객사의 신뢰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졌다.
“세상에 없던 소재 만들겠다”
2012년 12월 LG화학 CEO로 취임한 박 부회장의 첫 일성은 “내 경영학 사전에는 ‘고객’과 ‘인재’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였다. 기업 생존의 원천은 고객이고,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는 ‘인재’라는 의미다.
박 부회장은 ‘고객 관리’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1990년대 일본의 한 화학 기업 담당자를 만났을 때의 일 때문이다. 기업 경영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박 부회장은 그에게 “회사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 고객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해당 임원은 다소 당황해하면서 이렇게 답했다. “어떻게 감히 고객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고객 모시기’라고 하면 적절할까요….” 당시 그 기업으로선 LG화학이 고객사였다. 질문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때부터 ‘고객 모시기’라는 표현을 마음에 새겼다. 다임러 AG, 아우디 등 세계적인 완성차업체와 세계적인 가전업체가 고객사가 됐다.
박 부회장이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체질 개선’이다.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뒤 그는 오히려 임직원에게 “지금은 업황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하루가 다르게 한국산 제품을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제품 고급화, 사업 다각화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세상에 없던 소재’를 만들어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30년 전만 해도 박 부회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을 찾곤 했다. 새롭게 출시된 제품들을 살펴보며 앞으로는 어떤 소재가 필요할지, 어떤 색깔이 유행할지를 연구했다. 요즘은 다르다. 남의 것을 보고 쫓아가는 시대는 끝났다. 요즘은 고객사의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가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고객사도 미처 보지 못한 시장 트렌드를 읽고, 먼저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40년 전 입사할 때의 꿈은 아직도 그의 맥박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박진수 부회장의 인재론 "천리馬도 알아보는 사람 있어야 달린다"
“세유백락 연후유천리마(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박진수 부회장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고사다. ‘세상에 천리마가 아무리 많아도 이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백락은 주나라 사람으로 명마를 보는 눈이 누구보다 뛰어났다.
박 부회장은 “요즘 젊은 사람은 옛날 선배들만 못하다”는 임원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천리마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천리마를 알아볼 수 있는 백락이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리마를 찾는 심정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이유다.
그는 지난달 16일 채용 행사를 직접 주관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오는 9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간다. 그동안 인재 확보를 위해 이동한 거리만 지구 세 바퀴(13만㎞)에 달한다. 갈 때마다 현지 직원들을 불러 모아 회식도 한다.
직원의 안전 문제를 열심히 챙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화학 분야는 작은 사고도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는 요즘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책을 나눠주고 있다. 박 부회장은 “불량품이 생겼을 때 즉시 고치는 데는 1의 원가가 들지만 문책당하는 게 두려워 불량 사실을 숨기면 10의 비용이, 불량품이 고객 손에 들어가 클레임이 되면 100의 비용이 든다”며 “안전하지 않으면 생산하지도 말라”고 강조한다. LG화학은 매년 안전부문에만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박진수 부회장 프로필
△1952년 인천 출생 △1977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7년 (주)럭키 프로젝트실 입사 △1996년 LG화학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 △1999년 특수수지 사업부장 △2002년 ABS/PS 사업부장 △2003년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 △2008년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 △2012년 12월 LG화학 대표(사장) △2014년 LG화학 대표(부회장)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