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푸틴 장기집권은 국민들의 '강대국 향수' 때문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러시아는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해체된 뒤 경제는 엉망이었고 국정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 임기 시작 석 달 만인 2000년 8월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했다. 휴가 중이던 푸틴은 모스크바로 복귀하지 않고 사고 현장을 방문하지도 않았다. 2002년 체첸 반군이 모스크바의 두브로브카 극장을 공격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엉성한 구출작전으로 인질 130명을 죽게 만들었을 때도 푸틴은 태연했다. 그래도 푸틴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17년째 러시아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푸틴은 내년 대통령선거에 또다시 출마할 예정이다. 푸틴에 대항할 야권 지도자는 없고, 러시아 민중은 여전히 푸틴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폴란드 출신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인 월터 라퀴는 《푸티니즘》에서 러시아가 왜 푸틴을 지도자로 계속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근원을 파헤친다. 1950년대부터 러시아 관련 저서만 25권 이상 펴낸 세계적 러시아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을 2015년 출간했다. 그는 러시아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해야만 푸틴과 푸틴의 정책, 그의 엄청난 지지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푸티니즘’이란 푸틴 중심의 국가 자본주의와 국가 개입정책이라고 설명한다. 반서구주의를 동반한 독재정치의 일종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독재정치는 러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반까지 황제가 있었고 이후는 공산당 독재 시대였다. 지금도 국회는 존재하지만 야당은 진정한 야당이 아니다.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하지만 자유는 단지 소수 일간지에만 허용되고 비판도 제한된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푸티니즘 등장 배경에 과거의 영광을 향한 러시아의 열망이 있다고 전한다. 소련 해체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러시아 국가주의’와 ‘강대국 예찬론’으로 대체됐다. 옐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물가는 1000% 가까이 올랐고, 범죄와 비리가 들끓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비민주적인 사고방식에 찌든 상황에서 극심한 혼란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욕망을 일으켰다.

푸틴 집권 뒤 러시아 경제를 떠받치던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그의 강권 통치에 날개를 달아줬다. 2001~2007년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대를 유지했다. 2006년 국민총생산(GNP)은 옐친 집권 말기보다 두 배 많아졌고 모든 빚을 청산했다. 신생 중산층이 등장하고 각종 연금도 두 배로 증가했다. 국제 유가 급등이란 행운이 아니라 푸틴의 현명하고 효율적인 지도력 덕분에 경제가 살아났다고 국민들이 믿게 됐다는 것이다.

권력을 독점하던 소련 공산당이 위세를 잃으면서 등장한 세력은 ‘올리가르히’라고 불리는 신흥 재벌이었다. 1990년대 민간으로 넘어간 국영기업 수는 13만 개가 넘었다. 이들은 이때 정식 혹은 편법으로 이를 인수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푸틴이 권력을 잡은 뒤 이들은 거의 실권을 잃었다. 지금은 ‘제복을 입은 남자’를 뜻하는 ‘실로비키’가 실세가 됐다. 이들은 푸틴과 옛 소련 비밀경찰조직(KGB)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였다. 저자는 “푸틴은 스탈린이 이끌던 강대국 소련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적임자”라며 “젊은 세대의 주요 관심사가 자유 확대가 아니라 돈벌이와 경제 안정인 한 푸티니즘 체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