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와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6일 벨기에 브뤼셀 EU집행위원회 본부에서 일본·EU 경제협력협정(EPA)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뒤 손을 잡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와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6일 벨기에 브뤼셀 EU집행위원회 본부에서 일본·EU 경제협력협정(EPA)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뒤 손을 잡고 있다. 브뤼셀AP연합뉴스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자유무역협정인 경제협력협정(EPA)에 합의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자동차 기업이 EU 시장에서도 관세 인하분만큼 가격을 내리거나 마케팅 확대, 딜러망 관리 등의 다양한 전략을 통해 한국 차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 시장 공급 과잉, 미국 시장 성장세 둔화 등 주요 시장에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세계 3대 시장인 유럽마저 일본에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전방위적 협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수출 비중 클수록 타격

'무관세 날개' 다는 일본차…수출비중 높은 기아차·한국GM '타격'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 등에 따르면 지난해 EU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는 총 107만여 대가 팔렸다. 이 중 현대·기아자동차의 현지 생산 물량을 뺀 수출은 40만여 대다. 수출액은 47억7000만유로(약 6조3000억원)에 달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닛산자동차 등 7개 업체는 지난해 183만 대를 팔았다. 이 중 57만여 대가 수출이다.

한국과 일본은 EU 수입차 시장에서 2, 3위를 달리고 있다. 2012~2013년에는 한국·EU 자유무역협정(FTA)에 힘입어 한국이 2위를 차지했으나 이후 엔저(低)에 힘입은 일본 자동차 수출이 한국을 앞섰다.

일본·EU EPA에 따라 자동차 관세가 철폐되면 일본산 자동차의 EU 수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무관세로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관세 철폐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유럽 자동차 시장은 중국·미국과 함께 3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힌다. 중국이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집중 투자로 공급 과잉 상태에 접어들었고,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쌓였던 대기 수요가 소진되면서 올해부터 성장세가 꺾였다. 반면 유럽은 올해도 5월까지 5.3%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에 비해 대당 단가가 높아 주요 완성차업체가 역량을 집중하는 시장이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수출 비중이 높은 기아차와 쌍용차의 타격이 클 전망이다. 현대차는 체코 터키 등에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어 수출 물량이 전체 판매량의 10% 안팎이다. 반면 기아차는 현지 생산시설이 슬로바키아 공장밖에 없어 지난해 EU 판매량 42만 대 가운데 20만 대가 수출이었다. 쌍용차는 지난해 2만여 대를 수출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EPA가 완전히 발효되기 전에 수출 차종을 늘리고 현지 딜러 네트워크를 다져 충격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감 높아지는 부품업체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산 자동차 부품에 부과하던 관세(최대 4%)도 전체의 90%에 달하는 품목에 대해 발효 즉시 철폐되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부품협동조합 관계자는 “유럽 완성차업체에 수출하는 물량 일부가 일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부품업체들이 유럽 지역의 일본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부품 가격이 낮아져 일본 자동차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자 등 다른 업종에서도 EPA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전 부문에선 일본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부활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퍼지고 있다. TV 시장 3위인 소니가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자동차용 배터리 부문에선 파나소닉과 AESC 등이 유럽 완성차업체에 대한 공급 확대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반도체, 스마트폰, 철강제품 등은 이미 EU가 대부분 무관세로 수출입하고 있어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강현우/노경목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