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난의 유명한 관광지 펑황청(鳳凰城) 풍경이다. 후난 원주민인 묘족(苗族)의 체취가 풍성한 곳이다.
후난의 유명한 관광지 펑황청(鳳凰城) 풍경이다. 후난 원주민인 묘족(苗族)의 체취가 풍성한 곳이다.
[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21) 후난(湖南)] 마오쩌둥을 낳은 굴강(倔强)의 땅
후난(湖南)이 배출한 인물 중에서 우리에게 지명도가 가장 높은 사람은 마오쩌둥(毛澤東)이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최고 주역으로, 현대 중국의 가장 큰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톈안먼(天安門)의 성루에 크고 높게 걸린 초상화, 중국 지폐에 그려진 얼굴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가장 치열하게 이끌었고 혹독한 문화대혁명, 급진적인 좌파 실험, 철저한 개인숭배 등을 벌였다. 혁명의 풍운, 극단의 모험, 굽히지 않는 성격으로 이름이 높다. 이 점에서 후난의 전형이랄 수 있다.

중국인은 그런 후난 사람들에게 ‘强(굴강)’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완강하고 고집이 매우 세서 남에게 절대 무릎을 꿇지 않는 성격이다. 마오쩌둥의 이미지가 꼭 그렇다. 그런 강한 성격으로 중국의 혁명을 완수했으나, 또 무모할 정도의 극좌적 실험을 벌여 많은 비극을 불렀다.

거대한 내륙호수인 둥팅후(洞庭湖)의 북쪽이 후베이(湖北)란 점을 전에 설명했다. 호수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 湖南(호남)이다. 지역을 대표한 글자는 따로 있다. 瀟湘(소상)이다. 두 글자 모두 이 지역을 흐르는 하천 이름이다. 瀟水(소수)와 湘江(상강)이다. 지금은 湘(상)이 지역을 대표하는 간칭(簡稱)이다. 후난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반드시 이 글자가 맨 앞에 붙는다. 약 21만㎢의 크기에 인구는 6700만 명이 넘는다. 화려한 인문전통을 지녔지만 내륙에 속해 있어 경제 수준은 중간 정도다.

중원 사람들과는 혈통이 달라

요즘도 가끔 이곳 후난 사람들의 원류가 어디인지를 묻는 경우가 있다. 후난이 지금의 중국 정체성 속에 확실히 자리 잡은 점은 분명하지만, 뿌리와 연원을 따질 때 후난 사람들이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구석이 없지 않아서다. 좀체 굽히지 않는 성격, 화려한 상상력, 뛰어난 언변 등이 아무래도 이채(異彩)를 띠기 때문이다.

후난의 뿌리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三苗(삼묘)다. 지금 중국 소수민족의 한 갈래인 묘족(苗族)과 관련이 있으며, 먼 고대의 중국에서는 중원(中原)에 터전을 내린 일반 중국 사람과는 혈통이나 문화전승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더 넓게는 九黎(구려)라는 족속을 넣어 통칭할 때도 있다. 어쨌든 중원의 맥락을 이어 나중의 중국 문명 본류를 형성한 이들과는 달라도 퍽 달랐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 삼묘의 본바탕에 전란과 재난을 피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한 중원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지금의 후난 인문이 만들어졌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삼묘의 맥락은 춘추시대 초(楚)의 형성으로 중국 문명사에 작지 않은 빛을 던졌다. 중국 남방 문화의 큰 토대를 형성했으니 말이다. 마오쩌둥의 강인하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성격에서 중국 남방, 그리고 초나라 전통, 삼묘의 인문을 슬쩍 엿보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수많은 후난 인물의 하나에 불과하다.

펑더화이, 주룽지도 이 지역 출신

그에 앞서 청나라 대신으로 거대한 민란이던 태평천국(太平天國)운동을 잠재운 증국번(曾國藩)도 매우 유명한 후난 출신이다. 그는 태평천국의 수도(지금의 南京)에서 민란의 불씨를 모두 껐던 토벌대의 장수였다. 태평천국의 수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50만 명 이상을 학살한 일화가 두드러진다. 아울러 청나라 말기의 최고 대신으로 지혜, 처세(處世), 행정, 군략(軍略)의 모든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지금도 중국 서점의 스테디셀러 책 명단에는 그의 저작이 오르고 있을 정도다.

그런 증국번의 밑에서 빼어난 전쟁수행 능력을 보였던 좌종당(左宗棠)도 후난 출신이다. 아편전쟁으로 굴욕을 당한 중국의 병증(病症)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 《해국도지(海國圖志)》라는 서양문물 소개 책자를 지은 사람이 위원(魏源)이다. 중국 근대화의 틀을 놓은 인물인 그 또한 이곳이 고향이다. 마오쩌둥에게 굽히지 않아 거꾸로 그에게 숙청당한 6·25전쟁 참전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부패 관료를 처벌할 의도를 내비치면서 “내 관(棺)까지 가져오라”고 했던 철혈(鐵血)의 중국 총리 주룽지(朱鎔基) 등도 다 그런 ‘强(굴강)’이라는 후난 인문 전통의 요소를 선보인 사람들이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