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0억원씩 걷어 10년간 1조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모금액이 단 100만원에 불과하자 농민단체들이 정부가 직접 나설 것을 압박한다고 한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은 정부가 기금을 모금하면 위법으로 돼 있다”며 “관련법을 완화해서라도 별도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농식품부가 직접 나선다면 홍보 차원을 넘어 결국 ‘기업 팔 비틀기’로 가거나 ‘준조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게 뻔하다.

상생기금은 그동안 농민단체들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관련해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른바 ‘무역이득공유제’에서 나왔다. FTA로 기업이 거둔 이득의 일부를 환수해 농어업 등 ‘피해산업’을 지원하자는 무역이득세는 사실상 수출 대기업을 겨냥한 포퓰리즘적 발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수출 기업에 FTA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냐는 과잉입법 논란과 함께,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지금의 자발적 상생기금 조성이 대안으로 나왔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농민단체들은 기업이 적극 나서지 않은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기업이 한국 농업계를 바라보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은 왜 못 하는지 모르겠다. 동부팜한농의 유리온실 토마토사업, LG CNS의 새만금 스마트팜 진출 등을 좌절시킨 것은 다름 아니라 농민단체들이다. 당시 농민단체들은 이들 기업이 농민과 상생할 길을 찾아보겠다고 해도 대화를 거부하는 등 철저히 외면했다. 위압적인 시위와 겁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기업들이 기금을 잘 내지 않는다고 탓하니 이런 후안무치한 주장이 또 어디에 있나.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나서라고 하지만 그리되면 박근혜 정부의 ‘미르·K스포츠재단’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의 온갖 보조금에 절어 있다는 농어업이다. 농민단체들이 기업의 자발적 기금 조성과 이를 통한 상생을 원한다면 먼저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닫힌 농업의 문을 열고 기업과 함께 혁신하려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