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빚더미에 오른 기분입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한경밀레니엄포럼 행사에 앞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심경을 토로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포럼 내내 주위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김상조 효과’라는 말에 굉장히 부담이 클 것 같다. 정작 대기업 1년 매출도 안 되는 공정위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느냐”는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질문에 “고민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지적했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공정위의 역량이나 권한에 비해 많은 기대와 요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며 “자칫하면 부담과 부채가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밤잠을 못 자며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신중한 접근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20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선의로 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갖고 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라며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 내용을 인용했다. ‘역사에 기록된 대참사도 근원을 따져보면 선의에서 시작된 일’(줄리어스 시저)이라는 문구였다.

김 위원장은 “시저조차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공정거래위원장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규제 체계를 잘 만들고 운용해도 의도대로 결과가 안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포럼 중간중간에 “오늘은 말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봤을 때 나쁜 짓은 금융위원회가 더 많이 했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먹었다”고 한 발언의 여파인 듯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금융위가 고위 채널을 통해 강력 항의했고, 김 위원장이 곧바로 금융위에 사과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일단락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행사 시작과 함께 “원래 외부에서 강연할 때 일어서서 왔다갔다 하는 스타일이지만 최대한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앉아서 차분하게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서발(發) 고속철(SR)과 코레일 간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 경쟁을 저해하는 것 아니냐는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질문에는 “또 설화를 입을까봐 공기업과 관련해서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피해갔다.

자기반성적인 발언도 내놨다. 김 위원장은 “최근 들어 경제력 집중 문제가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질문에는 “지표를 어떻게 만들어도 2014년 이후에는 경제력 집중 추세가 꺾였다는 것이 확연하다”며 “사고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또 “뭐가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과거식 사고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반성한다”고도 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