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금융회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의 걸림돌이 없어져 월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10일(현지시간) 은행과 카드사 등을 상대로 소비자가 보다 쉽게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채택했다고 발표했다.

잘못된 약관이나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본 소비자가 소송에 앞서 의무적으로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한 ‘강제중재’ 조항을 금융회사가 적용할 수 없도록 새로운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동안 대형 금융회사들이 소비자 분쟁을 강제중재에 묶어둔 채 법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개인을 상대로 합의를 종용하면서 집단소송을 내지 못하도록 해왔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는 또 합의서에 관련 내용을 비공개로 하는 조항을 넣어 피해자가 언론이나 법 집행기관에 제보하는 것도 차단했다.

NYT는 그동안 소비자가 금융 상품에 가입할 때 약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조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강제중재를 받아들여야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로운 법안으로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대형 금융회사는 고객을 상대로 중재를 강요하거나 소비자가 연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법안으로 금융회사들은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화당은 과잉입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후원자가 많은 집단소송 변호사들을 유리하게 해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채택된 법안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 해결 절차인 중재 대신 변호사의 배만 불리는 소송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새로운 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의회에서 번복될 가능성도 있다. 의회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공화당이 ‘의회검토법’을 적용해 이를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창설한 CFPB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청산 대상이 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며 이 법안 역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