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발표회'가 열렸다. (왼쪽부터)패널 토론에 참석한 김도현 국민대 교수, 변태섭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창수 국무조정실 규제총괄정책관, 김태훈 레이니스트 대표, 김태호 풀러스 대표. / 사진=구글코리아 제공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발표회'가 열렸다. (왼쪽부터)패널 토론에 참석한 김도현 국민대 교수, 변태섭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창수 국무조정실 규제총괄정책관, 김태훈 레이니스트 대표, 김태호 풀러스 대표. / 사진=구글코리아 제공
"우버 같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한국에서는 사업도 못한다. 한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제를 풀고 진입장벽부터 낮춰야 한다."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와 관련 학회, 국회의원들이 모여 규제 환경 개선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진 한국 스타트업에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구글 캠퍼스서울과 아산나눔재단은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타트업코리아! 정책발표회'를 열었다. 행사는 한국벤처창업학회와 한국창업학회, 한국중소기업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수호 맥킨지코리아 파트너는 "우리나라는 규제와 관리가 지나치게 엄격해 글로벌 혁신 모델 사업의 절반 이상이 사업화에 제한을 받는다"며 "특히 금융,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 헬스케어 관련 서비스에서 규제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맥킨지코리아의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글로벌 누적 투자액 기준 상위 70%의 스타트업 사업 모델이 국내에서는 규제 저촉 탓에 사업이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 규제가 심한 금융, O2O, 헬스케어 사업은 전세계 유니콘 기업의 40%를 차지할 만큼 경쟁력있는 분야다.

국내 규제에 가로막힌 사업 모델 사례로는 중국의 안트파이낸셜과 미국의 우버가 언급됐다. 알리바바의 자회사 안트파이낸셜은 클라우드 기반의 금융 플랫폼 사업으로 중국 핀테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 모델을 국내 시장에 적용하면 규제에 저촉된다. 금융회사의 정보처리업무위탁에 관한 규정상 클라우드에 금융 정보를 올리는 행위가 위법이기 때문이다. 우버의 경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위반하게 된다.

외국 스타트업이 성과를 내고 있는 해외 송금 서비스도 국내에서는 은행만의 고유 업무로 한정됐다. 최근 법 개정이 이뤄져 일정 요건을 갖춘 핀테크 업체도 해외 송금 사업을 영위할 수 있지만, 여전히 과도한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김 파트너는 "자기자본 10억~20억원, 일평균 지급 요청액의 3배를 금융감독원에 예탁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며 "이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사실상 사업을 불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규제와 높은 진입장벽이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를 야기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기준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스타트업 중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미국이 56개로 가장 많았고, 중국 24개, 영국 6개 순이었다.
[현장+] "글로벌 경쟁 뒤쳐진 韓 스타트업, 규제 완화 시급"
규제 환경을 개선할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개방형 규제 체제로의 전환 ▲규제 신설 최소화 장치 등을 요구했다. 사전 규제에 치중한 법 체계를 네거티브 규제 중심으로 전환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같은 사후 억지 장치를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법 체계 전환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 '한정 인가'나 '비조치 의견서' 같은 대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비조치 의견서는 관련 법규 위반이 우려될 때 사전에 당국의 판단을 구하는 제도다.

새로운 규제가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제 심사 전문기구를 만들자는 방안도 제기됐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규제 심사 전문기구가 규제 법안을 사전에 의무적으로 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발표자와 토론자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부족하다는 데에도 공감했다. 실제로 2011년 6만5000개였던 연간 신설 스타트업 법인 수는 지난해 9만6000개로 늘어났다. 벤처 펀드 조성액도 2012년 8073억원에서 지난해 3조1998억원까지 급증했다. 연평균 40%씩 꾸준히 증가한 셈이다.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단적으로 국내 스타트업은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드는 시간이 해외보다 훨씬 길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투자금의 평균 회수 기간은 13.4년이지만, 미국은 그 절반인 6.8년에 불과하다. 민간 출자 비중만 봐도 국내 57%, 미국 98%로 차이가 크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정책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질적 성장을 위한 방안으로는 민간 자본 투자 활성화, 창업 문화 개선 등이 제시됐다. 벤처캐피털(VC) 제도 개선과 투자 업종 규제 완화 등 투자자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질적 투자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육성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카풀 서비스 스타트업 풀러스의 김태호 대표는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수십년 전 법과 싸우고 있는데 늘 미래보다 과거가 이긴다"며 "오래 전부터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필드에서 느끼는 온도 변화는 아직 없다.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희진 한경닷컴 기자 hotimp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