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428쪽│2만2000원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에서 이런 통설과는 전혀 다른 인류 문명 발전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5만 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이전의 원시인류에게도 인간만의 특징적인 정신세계가 있었으며, 그 덕분에 현생인류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1만 년 전 현생인류의 출현까지 원시인류의 정신사를 다각도로 훑는다. 이를 통해 문자와 언어가 발명되기 전에도 인간은 타인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영적 인간’이었고, 도시와 문명의 탄생 이전에 나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며 ‘더불어 사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궁극적인 조건이 인간에 내재한 이타적 유전자, 즉 이타심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전 세계에서 발견된 원시인류의 흔적들을 샅샅이 탐구한다. 에티오피아 중부 아와시에서 발견된 440만 년 전의 유인원 ‘아르디’와 ‘루시’, 260만 년 전부터 거의 100만 년 동안 석기를 만들었던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올두바이 협곡,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 동굴에서 발견된 75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과 석탄, 재, 화로 등 다양한 선사 인류를 만나게 된다.
인간은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머리카락을 제외한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불을 사용하게 되자 인간의 위상이 맹수보다 높아졌다. 음식을 익혀 먹게 되고 요리를 하면서 치아는 작아지고 뇌는 커졌다. 또한 음식을 때에 맞춰 먹는 ‘식사’라는 예절을 창조해냈다. 함께 모여 살면서 가족과 약자를 돌보는 배려의 문화를 만들어냈고, 스스로를 이타적 동물로 변모시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변화는 공감, 교감, 묵상, 그림 그리기, 사후세계와 종교의 발명 등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통해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했다는 진화론의 맹점을 지적한다. 그는 “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이며 오늘의 인간을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이타심”이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