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는 이미지(왼쪽)와 이를 대장균에 넣었다가 복원한 그림(오른쪽). 90% 일치율을 보인다. 미국 하버드대 제공
말타는 이미지(왼쪽)와 이를 대장균에 넣었다가 복원한 그림(오른쪽). 90% 일치율을 보인다. 미국 하버드대 제공
미국 과학자들이 살아 있는 대장균에 사진과 동영상 데이터를 집어넣었다가 꺼내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유전자에 동영상 정보를 저장했다가 복원한 건 처음이다. 세계적인 유전자 전문가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19세기 영국의 유명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인간과 동물의 운동’이란 작품 사진과 동영상 정보를 살아 있는 세균 DNA에 저장했다가 이를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13일 소개했다.

데이터 사용량이 급속히 늘면서 실리콘 반도체로 만든 메모리 용량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생명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이를 대체할 유력한 차세대 저장장치로 보고 있다. 이른바 ‘분자 기록장치’다. 컴퓨터 메모리에 정보가 0과 1의 다양한 조합으로 저장된다면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 등 네 가지 염기 조합으로 정보를 표현한다.

연구진은 가로·세로 각각 56개 화소로 이뤄진 손바닥 그림을 디지털 정보(이진수)로 변환했다. 그리고 화소마다 색깔과 위치 정보를 네 가지 염기 조합으로 바꿨다. 연구진은 3세대 유전자 가위(CRISPR-Cas9)에 사용되는 기술을 이용해 사진 정보를 담은 염기조각을 대장균에 집어넣었다. 약 7일이 흐른 뒤 증식한 대장균 DNA를 모아 분석한 결과 원본과 똑같은 손바닥 그림 정보를 담고 있었다.

연구진은 마이브리지가 찍은 연속 사진 5장으로 구성된 짧은 동영상 정보를 대장균에 넣었다가 90% 정확도로 재생하는 데도 성공했다. 김상태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세포 300개 정도로 1테라바이트 용량의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