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특별 공동위원회를 오는 8월 워싱턴DC에서 열자고 한국 정부에 12일(현지시간) 공식 요청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필요한 개정을 검토하는 협상 과정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FTA를 재협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 FTA 규정상 한쪽이 재협상을 요구하면 상대국이 응해야 하는 만큼 미국은 지난달부터 개정 내지 재협상 의사를 명백히 밝혔던 셈이다.

한심한 건 우리 정부의 태도다. 양국 정상회담 후 청와대와 정부는 순진하게도 “재협상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는 말만 반복해 왔다. 엊그제 미국이 이를 공식화하자 예상보다 빠르다며 이제야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한다.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 협상”이라며 FTA 전면 수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한·미 FTA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현실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면피성 변명만 자꾸 늘어놓을 게 아니라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하고 하루라도 빨리 치밀한 대응 전략부터 짜야 한다. 우선은 우리 측 협상 창구가 될 통상교섭본부 설치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부터 서둘러야 한다. 국익이 걸린 문제인 만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여야를 떠나 국회를 설득하는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미 FTA가 불평등하다는 미국 측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상품과는 달리 서비스 교역은 FTA 후 대미 적자가 크게 늘었다. 재협상이든 개정이든 당당하게 대응하면 한국에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