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 요구를 ‘재협상’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에서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프랑스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한·미 FTA는 끔찍한 거래”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한국과의 무역에서 한 해 400억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내고 있다”며 “어제부터 한국과 재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12일 30일 안에 한·미 FTA 특별공동위 개최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다만 서한에는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과 ‘수정’이라는 단어를 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전에도 수차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거론했다. 지난 4월 말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끔찍한 협정”이라며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환영만찬을 한 뒤에는 트위터에 “한국과 새로운 협상을 시작했다”고 적었다. 이튿날 정상회담 직후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불러 재협상 준비를 지시했다고 백악관 측이 발표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경우에 따라 협정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다시 뒤엎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3일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협정문상의 정확한 용어는 개정(amendment)과 수정(modification)이며 재협상(renegotiation)은 없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미국 통상전문매체 인사이드US트레이드는 13일(현지시간) “미 의회와 관련 업계는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화나게 할 수 있는 완전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을 우려했다”며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한국에 공식 전달한 서한을 통해 이들을 진정시켰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와 기업인들을 의식해 서한에서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피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철강 규제와 관련, “(각국의 철강 덤핑수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수입 할당과 (추가)관세부과 조치가 있는데 이들 두 개 모두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지난달 말께 규제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입 철강을 사용하는 미국 기업과 다른 교역국의 보복 조치를 우려하는 국무부, 재무부, 국방부, 백악관의 반대로 발표를 연기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