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31·여)는 며칠 전 야근 후 택시를 탔다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계속 말을 거는 기사에게 ‘피곤하니 조용히 가고 싶다’고 양해를 구했더니 다짜고짜 ‘사실 내가 강도 전과가 있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놀란 김씨는 황급히 택시에서 내렸다. “어디 사는지 아니까 민원은 안 넣을 거라 믿는다”는 기사의 말이 뒤통수를 때렸다. “당분간 택시는 못 탈 것 같다”는 게 김씨의 토로다.

전과자 택시기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건 발생 15년 만인 지난달 검거된 ‘2002년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범인은 강도죄로 2년여 복역한 전과가 있는 개인택시 기사였다. ‘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은 중범죄자의 택시 면허 신규 취득을 제한한다. 하지만 시행령이 발효된 2012년 8월 이전 택시 면허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택시기사 채용 과정의 허술한 관리가 문제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4월 교통안전공단이 전국 27만여 명의 영업용 택시기사 범죄 이력을 조사한 결과 살인미수, 강도, 성범죄 등 강력범죄 전과자가 84명이나 적발됐다. 2012년 8월 이후 형이 확정된 기사들이 버젓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이번 조사결과를 볼 때 2012년 이전 흉악범죄자의 택시운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택시회사들의 무신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3월 승객 사무실에 따라 들어가 돈을 훔친 택시기사 이모씨(53)는 특수강도강간 등 12건의 전과가 드러났다. 택시회사가 이씨의 범죄 경력을 검증하지 않고 채용했던 것이다. 한 택시회사 관계자는 “기사 공급이 수요보다 적다 보니 범죄 경력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놨다.

엄격한 전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개인택시 기사 천성식 씨(62)는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다 흐리는 형국”이라며 전과자의 택시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인택시를 운전하는 조모씨(36) 역시 “극소수 불량 기사들 때문에 선량한 기사들이 욕을 먹는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해법 마련은 쉽지 않다. 우선 전과자의 택시 운전을 금지시킬 근거가 부족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강력범죄자가 일괄적으로 20년간 택시 운전을 못 하도록 한 규정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 일선 경찰관은 “전과자를 배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인지 판단도 쉽지 않다”고 했다.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사는 전과 전력의 택시기사도 많은 만큼 이들이 핸들을 잡지 못하면 범죄 유혹에 더 쉽게 빠져들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