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조각한 50년…"물성(物性)에 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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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조각가 심문섭 씨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조각가 심문섭(74)은 3년 뒤 열릴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존의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공사 현장을 목격했다. 건물이 헐리면서 수많은 목재가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버려진 목재(물질)에도 정신이 숨어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조각재료의 물성 탐구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철거된 건물의 목재를 활용해 장대한 스케일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목을 ‘목신(木神)’으로 붙였다. 물질과 정신의 교집합을 나무의 물성으로 묘사한 것이다.
‘목신’ 등 대표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 회화, 사진까지 망라해 심씨의 50년 미술인생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14일 시작해 오는 10월9일까지 펼쳐지는 회고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장기 프로젝트인 ‘현대미술작가’ 시리즈 마지막 행사다. 관람객이 온몸을 열어 조형예술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꾸민 교감의 향연장이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심씨는 1971~1975년 파리 청년 비엔날레에 선발되면서 국제적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상파울루 비엔날레, 인도 트리엔날레 등 각종 국제행사에 참가해 세계적인 작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전통 조각의 통념을 반대하며 조각의 혁신을 꾀한 그는 제1회 김세중 조각상(1987)과 한불 문화상(2002),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 훈장(2007)을 잇달아 받았다.
‘자연을 조각하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관계’시리즈를 비롯해 ‘현전’ ‘토상’ ‘메타포’ ‘제시’ ‘반추’ 시리즈 등 대표작 100여 점을 내보인다.
나무를 소재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조형미학을 추구해온 심씨는 “조각은 재료의 예술이자 물질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작가가 작품에 얼마나 개입할지가 중요했죠. 조각가가 생각하는 대로 100% 끌고 갔어요. 하지만 지금은 작가의 얘기를 줄이고 물질에 얘기를 시키자는 겁니다. 적당한 지점에서 물질 내부의 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죠.”
물성의 뿌리를 찾는 그의 탐색은 5~10년을 주기로 작업에 변화를 주며 이어졌다. 혁신적 조각 형식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50년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한국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념비적 작업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1970년대 작품(‘관계’)은 흙, 철판, 시멘트, 파이프, 돌, 종이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상황적인 긴장감을 연출했다. 날것의 재료에 인간의 행위를 더해 우연성을 살렸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1980년대에는 부드러운 특성을 지닌 점토에 주목했다. 점토가 채 마르기 전에 힘을 가해 끊어지거나 부러진 형태감을 강조한 작품(‘현전’), 손가락으로 점토를 누르거나 길게 늘여서 휘는 물성을 중시한 작품(‘토상’)은 ‘물질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작품이다.
반면 나무와 철의 물성을 접목한 1990년대 ‘메타포’, 물질들의 관계와 모순을 통해 생명의 가능성을 연출한 2000년대 ‘제시’, 평범한 재료로 역사성을 묘사한 ‘반추’ 시리즈 등은 물질과 연결된 또 다른 세계(자연)와의 긴밀한 관계를 형상화한 게 특징이다. 작가는 “나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퍼덕이는 생동감으로 끊임없이 변화의 흐름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목신’ 등 대표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 회화, 사진까지 망라해 심씨의 50년 미술인생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14일 시작해 오는 10월9일까지 펼쳐지는 회고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장기 프로젝트인 ‘현대미술작가’ 시리즈 마지막 행사다. 관람객이 온몸을 열어 조형예술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꾸민 교감의 향연장이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심씨는 1971~1975년 파리 청년 비엔날레에 선발되면서 국제적 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상파울루 비엔날레, 인도 트리엔날레 등 각종 국제행사에 참가해 세계적인 작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전통 조각의 통념을 반대하며 조각의 혁신을 꾀한 그는 제1회 김세중 조각상(1987)과 한불 문화상(2002),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슈발리에 훈장(2007)을 잇달아 받았다.
‘자연을 조각하다’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한 ‘관계’시리즈를 비롯해 ‘현전’ ‘토상’ ‘메타포’ ‘제시’ ‘반추’ 시리즈 등 대표작 100여 점을 내보인다.
나무를 소재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조형미학을 추구해온 심씨는 “조각은 재료의 예술이자 물질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작가가 작품에 얼마나 개입할지가 중요했죠. 조각가가 생각하는 대로 100% 끌고 갔어요. 하지만 지금은 작가의 얘기를 줄이고 물질에 얘기를 시키자는 겁니다. 적당한 지점에서 물질 내부의 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죠.”
물성의 뿌리를 찾는 그의 탐색은 5~10년을 주기로 작업에 변화를 주며 이어졌다. 혁신적 조각 형식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50년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한국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념비적 작업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1970년대 작품(‘관계’)은 흙, 철판, 시멘트, 파이프, 돌, 종이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상황적인 긴장감을 연출했다. 날것의 재료에 인간의 행위를 더해 우연성을 살렸다는 게 심씨의 설명이다. 1980년대에는 부드러운 특성을 지닌 점토에 주목했다. 점토가 채 마르기 전에 힘을 가해 끊어지거나 부러진 형태감을 강조한 작품(‘현전’), 손가락으로 점토를 누르거나 길게 늘여서 휘는 물성을 중시한 작품(‘토상’)은 ‘물질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작품이다.
반면 나무와 철의 물성을 접목한 1990년대 ‘메타포’, 물질들의 관계와 모순을 통해 생명의 가능성을 연출한 2000년대 ‘제시’, 평범한 재료로 역사성을 묘사한 ‘반추’ 시리즈 등은 물질과 연결된 또 다른 세계(자연)와의 긴밀한 관계를 형상화한 게 특징이다. 작가는 “나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퍼덕이는 생동감으로 끊임없이 변화의 흐름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