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미국 상장 기업의 기대 수명은 30년에 불과하다. 5년 후 회사가 사라질 확률은 평균 32%나 된다.

《전략에 전략을 더하라》(한국경제신문)의 저자 마틴 리브스 BCG 뉴욕 오피스 시니어 파트너 겸 브루스 헨더슨 연구소 소장(사진)은 과거 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회사가 1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은 무엇입니까.” 리브스는 ‘기업의 장수 비결’을 연구하기 위해 사이먼 레빈 프린스턴대 생물학과 교수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오랜 기간 생존과 멸종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면역체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4일 서울 장교동 BCG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리브스는 “다양한 동·식물의 면역체계를 연구해 기업이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는 7가지 원칙을 정리했다”고 소개했다. 7가지 원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한 완충장치 마련(redundancy) △사업 다각화를 통한 다양성 유지(diversity) △모듈화를 통한 생존 가능성 확대(modularity)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adaptation) △예외적이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신중함(prudence) △사회와 상호 신뢰 구축을 통한 뿌리 내림(embeddedness) △자기 파괴적 혁신(self-disruption) 등이다.

예를 들어 몰락한 코닥과 살아남은 후지필름 사이에서는 다양성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후지필름은 필름을 만들 때 쓰이는 화학 기술을 활용해 에볼라 치료제를 만들고, 레이저 내시경 사업에 진출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프랑스의 광학렌즈 회사 에실러는 자사에 위협이 될 만한 기술을 모두 사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위협에 대해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음으로써 신중함을 추구한 사례다.

또 세계적인 인슐린 제조업체 노보노디스크는 인슐린 제품을 판매하는 데 주력하는 대신 의사들과 환자들에게 당뇨병의 위험성을 알리고 보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단기적으로 제품 판매량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사회와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 7가지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리브스는 “정치·사회적 불확실성이 가속화되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상황인 만큼 ‘자기 파괴적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혁신당하기 전에 혁신하라는 것. DVD 대여 서비스를 하던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에 진출하고, 호주 항공사 퀀터스항공이 저가 항공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자마자 스스로 저가 항공 라인을 론칭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브스는 회사가 잘되고 있을 때일수록 스스로를 혁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기업의 장수 비결은 얼마나 빨리 위급성을 깨닫는데 달렸다”고 말했다.

삼성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기업 경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신중함’을 갖췄다”며 “총수 지배 체제에서는 ‘파괴적 혁신’을 위한 신속한 결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장수 기업의 조건을 여럿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고재연/사진=신경훈 기자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