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은 되고 ‘맥치’는 안된다? 국세청 모호한 고시 개정에 소비자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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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고시 개정 1년 만에 조문 개정…해석 여전히 ‘모호’
국세청 졸속 개정에 애꿎은 청년 사업가들만 손해
“법 테두리에서 했는데...” 시장·소비자 혼란 가중
벨루가는 지난 3월부터 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를 해온 스타트업이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희귀한 국산·수입 수제맥주 4병씩을 2주에 한번 꼴로 배송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맥주를 발굴하고, 전문 정보를 함께 제공하면서 호응을 얻었다. 정기 회원 수는 3개월 만에 200명을 넘어섰다.
벨루가는 19일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이달부터 ‘음식점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만 배달하라’고 주류 고시의 조문을 바꾸면서다. 김상민 벨루가 대표는 “고시 변경에 대비해 셰프를 채용하고 직접 조리한 햄버거, 치즈스틱 등을 맥주와 함께 배달했지만 민원이 계속 제기돼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며 “주류 유통 혁신 모델이 안착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치킨집 맥주배달은 O, 맥주집 치킨 배달 X
벨루가 뿐만아니다. 수제맥주 전문점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역시 지난 3월부터 서울 강남 지역에 햄버거와 함께 수제캔맥주 배달 서비스를 했다가 두 달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세청이 “생맥주를 페트병 등에 소분해서 판매하는 것은 주세법, 식품위생법 위반이다”며 주류고시 위반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모호한 주류 고시와 개정으로 인해 업계와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 주세법상 전통주를 제외한 나머지 술의 온라인(통신)판매는 금지돼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까지 ‘치맥’을 배달시키는 건 불법이었다.
국세청은 작년 7월 ‘음식과 함께 배달되는 맥주’를 합법화했다. 당시 전화로 주문받은 치킨+맥주, 족발+소주 등의 배달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었다. 앞서 그해 4월에는 야구장의 ‘맥주보이’ 논란도 있었다. 국세청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야구장에서 맥주를 파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여론은 들끓었다.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법이며, 사전 규제의 도가 지나치다는 이유였다. “자영업자와 일반 국민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 셈이냐, 차라리 홈런을 없애라”는 등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국세청은 부랴부랴 작년 7월 말 고시를 개정했다. 주류 판매 장소를 ‘체육 시설이나 축제장 같은 공간’으로 확대해 맥주보이를 가능하게 했다. ‘대면 판매’를 한번 한 뒤에는 배달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치맥 배달도 합법화한 것이다.
◆법 테두리 지킨 스타트업 ‘울상’
창업 아이템을 찾던 수제맥주 회사와 스타트업 업계는 들썩였다. 음식을 동반한 맥주의 통신 판매가 합법화되자 맥주 당일 배송, 맥주 테이크아웃, 맥주 정기 배송 등의 서비스가 등장했다. 국세청은 일부 외식업체와 기존 주류 회사들의 견제와 민원이 계속되자 “음식이 ‘주’고, 술은 ‘부’가 되어야 하는데 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회사가 많다”고 했다. 국세청은 지난 1일 주류고시 및 주세규정사무처리 개정안을 발표하고 “전화로 주문받은 음식을 주류와 함께 배달할 수 있다”는 조문을 “전화로 주문받아 ‘직접 조리한’ 음식에 주류는 ‘부수하여’ 배달할 수 있다”고 개정했다.
업계와 소비자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청소년 보호 등을 이유로 주류 관련 법이 엄격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여론에 이끌려 모호하게 법 개정을 해놓고, 그 피해는 창업자들과 소비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치킨집에서 한마리 배달 시키고 맥주 10병을 시키는 건 되고, 수제맥주집에 맥주 한 병과 안주를 주문하는 건 안된다는 논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외에서 맥주 배달이나 배송과 관련한 스타트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미국 ‘드리즐리’는 보스턴, 뉴욕, 스카고 등 대도시에서 수제맥주와 희귀 와인을 배송하고 있다. 아마존도 2015년 미국 시애틀 지역에서 1시간 내 맥주, 와인 등 주류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국 스타트업 '어니스트브루'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100여개 수제맥주 양조장과 손잡고 매주 가입자에 새로운 수제맥주를 배송해주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국세청 졸속 개정에 애꿎은 청년 사업가들만 손해
“법 테두리에서 했는데...” 시장·소비자 혼란 가중
벨루가는 지난 3월부터 맥주 정기배송 서비스를 해온 스타트업이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희귀한 국산·수입 수제맥주 4병씩을 2주에 한번 꼴로 배송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맥주를 발굴하고, 전문 정보를 함께 제공하면서 호응을 얻었다. 정기 회원 수는 3개월 만에 200명을 넘어섰다.
벨루가는 19일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이달부터 ‘음식점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만 배달하라’고 주류 고시의 조문을 바꾸면서다. 김상민 벨루가 대표는 “고시 변경에 대비해 셰프를 채용하고 직접 조리한 햄버거, 치즈스틱 등을 맥주와 함께 배달했지만 민원이 계속 제기돼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며 “주류 유통 혁신 모델이 안착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치킨집 맥주배달은 O, 맥주집 치킨 배달 X
벨루가 뿐만아니다. 수제맥주 전문점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역시 지난 3월부터 서울 강남 지역에 햄버거와 함께 수제캔맥주 배달 서비스를 했다가 두 달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세청이 “생맥주를 페트병 등에 소분해서 판매하는 것은 주세법, 식품위생법 위반이다”며 주류고시 위반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모호한 주류 고시와 개정으로 인해 업계와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행 주세법상 전통주를 제외한 나머지 술의 온라인(통신)판매는 금지돼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까지 ‘치맥’을 배달시키는 건 불법이었다.
국세청은 작년 7월 ‘음식과 함께 배달되는 맥주’를 합법화했다. 당시 전화로 주문받은 치킨+맥주, 족발+소주 등의 배달이 불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었다. 앞서 그해 4월에는 야구장의 ‘맥주보이’ 논란도 있었다. 국세청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야구장에서 맥주를 파는 행위를 단속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여론은 들끓었다.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법이며, 사전 규제의 도가 지나치다는 이유였다. “자영업자와 일반 국민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 셈이냐, 차라리 홈런을 없애라”는 등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국세청은 부랴부랴 작년 7월 말 고시를 개정했다. 주류 판매 장소를 ‘체육 시설이나 축제장 같은 공간’으로 확대해 맥주보이를 가능하게 했다. ‘대면 판매’를 한번 한 뒤에는 배달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치맥 배달도 합법화한 것이다.
◆법 테두리 지킨 스타트업 ‘울상’
창업 아이템을 찾던 수제맥주 회사와 스타트업 업계는 들썩였다. 음식을 동반한 맥주의 통신 판매가 합법화되자 맥주 당일 배송, 맥주 테이크아웃, 맥주 정기 배송 등의 서비스가 등장했다. 국세청은 일부 외식업체와 기존 주류 회사들의 견제와 민원이 계속되자 “음식이 ‘주’고, 술은 ‘부’가 되어야 하는데 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회사가 많다”고 했다. 국세청은 지난 1일 주류고시 및 주세규정사무처리 개정안을 발표하고 “전화로 주문받은 음식을 주류와 함께 배달할 수 있다”는 조문을 “전화로 주문받아 ‘직접 조리한’ 음식에 주류는 ‘부수하여’ 배달할 수 있다”고 개정했다.
업계와 소비자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청소년 보호 등을 이유로 주류 관련 법이 엄격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여론에 이끌려 모호하게 법 개정을 해놓고, 그 피해는 창업자들과 소비자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치킨집에서 한마리 배달 시키고 맥주 10병을 시키는 건 되고, 수제맥주집에 맥주 한 병과 안주를 주문하는 건 안된다는 논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외에서 맥주 배달이나 배송과 관련한 스타트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미국 ‘드리즐리’는 보스턴, 뉴욕, 스카고 등 대도시에서 수제맥주와 희귀 와인을 배송하고 있다. 아마존도 2015년 미국 시애틀 지역에서 1시간 내 맥주, 와인 등 주류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국 스타트업 '어니스트브루'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100여개 수제맥주 양조장과 손잡고 매주 가입자에 새로운 수제맥주를 배송해주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