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사토크] 과학적 사고의 빈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수지 적자폭이 더 커져 손해를 보고 있다며 내달부터 협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개정·수정이 아니라 재협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북핵 해법 등을 놓고 양국 관계가 미묘한 때다. 문재인 정부가 난제를 만났다.

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FTA가 없었다면 미국의 적자폭이 더 커졌을 것이란 미 상무부 산하 연구소 보고서 등 반박 논리를 다각적으로 갖춰야 한다. 무역수지는 한국이 흑자지만 서비스수지는 미국이 흑자라는 점, 우리 기업들의 대미(對美) 투자 급증, 미국 자동차 수입 증가 효과 등 서로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료들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FTA 성과를 따져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준비하라”고 당부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법률 등 서비스 시장과 농산물 시장을 더 개방해야 할 수 있다.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다.

한·미 FTA 반대 투쟁의 추억

걱정되는 것은 미국보다 우리 내부다. 당장 정부와 여당이 난처한 처지일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체결한 한·미 FTA를 반대하며 재협상까지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여당이다. 당시 아이들까지 불러내 길거리 투쟁을 한 기억도 생생하다. 온 나라를 뒤흔든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 투쟁은 또 어땠나. 그러니 지금 말이 꼬이지 않을지 우려되는 것이다. 과거의 반대 투쟁을 반성부터 해야 논리가 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야 국민이 따라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사례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원전 전문가가 한 명뿐이고, 일본 고등어가 위험하니 먹지 말라는 미생물학자는 환경 운동가가 아닌 원전 전문가로 통하는 지경이다. 더구나 신고리 원전 백지화 여부 역시 전문가가 아닌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할 예정이다.

다수결로 지성을 파괴하나

여기에 내년 전력 최대 사용량이 올해보다도 적고, 2030년 전력 수요는 종전 조사보다 10%나 줄어들 것이라며 불과 2년 만에 에너지 수급 예측이 뒤집히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기차, 인공지능(AI) 등으로 전력 수요가 엄청나게 늘 것인데 다름 아닌 이른바 전문가 워킹그룹에서 납득이 안 가는 이런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온실가스 도그마에 갇혀 부풀려졌던 배출전망치(BAU) 추계를 연상시킨다. 진짜 전문가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이 정도가 아닐 것이다. 주요 국정 현안을 다룰 정책기획위원회,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엔 과연 진짜 전문가가 몇 명이나 들어갈지 알 수 없다.

본래 전문가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과학적 지력과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국가의 중대사를 비전문가들의 다수결로 정하는 게 국정 운영일 수는 없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매몰비용, 기회비용은 또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어느새 전문가를 무시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가짜 과학, 사이비 전문가 전성시대다. 진짜 전문가들은 침묵하기만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유(類)의 소설 같은 엉터리 논리가 판쳤을 때부터 예견된 불상사였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공부하지 말고 전문성을 갖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력이 낮은 사회, 과학을 부정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다수결로 지동설을 천동설로 바꿀 텐가.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