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막장 드라마' 뺨친 통신비 인하 대책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달 22일 통신비 절감 최종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도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통신 3사는 대형 로펌을 통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자율과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반(反)시장주의 정책이란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이던 지난 4월11일 ‘월 1만1000원 기본료 완전 폐지’를 최우선 실행과제로 정한 통신비 절감 7대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정기획위가 지난달 내놓은 최종 대책에는 정작 제1 공약으로 앞세웠던 기본료 폐지는 빠지는 대신 공약집에 없던 ‘취약계층 요금감면 확대,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조정, 보편요금제 도입’ 등이 담겼다.

지난 6월 한 달간 국정기획위를 중심으로 벌어진 통신비 인하 정책결정 과정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본 듯한 씁쓸함을 자아낸다. 개념 상실의 주연 ‘국정기획위’, 맹활약이 돋보인 주연급 조연 ‘시민단체’, 대반전을 선보인 카메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우선 기본료 폐지라는 공약 자체가 재탕, 삼탕에 가까운 진부한 소재다. 19대 국회 당시 우상호·이개호 의원, 최민희 전 의원 등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내 ‘통신비 인하를 위한 의원모임’과 참여연대가 기본료 폐지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기본틀을 짰다. 이 법안은 별다른 논의 없이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 들어 같은 내용의 법안이 다시 제출됐다. 민주당 당론이나 다름없던 기본료 폐지 정책은 당내 일부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선 공약에 포함됐다.

공약 이행에 나선 국정기획위는 시작부터 갈팡질팡했다. 애초 2세대(2G), 3세대(3G), 4세대(LTE) 등 모든 이동통신 요금제의 기본료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가 2G, 3G 기본료만 우선 폐지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등 혼선을 빚으면서 ‘공약 후퇴’ 논란을 자초했다. 국정기획위 핵심 인사조차 “국민 기대 수준은 높아졌는데 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국정기획위가 코너에 몰리자 시민단체가 때맞춰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국정기획위 위원들과 만나 보편적 통신요금 인하라는 생소한 개념의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국내 5500만 이동통신 가입자들에게 차별 없이 같은 수준의 요금 인하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면담을 계기로 국정기획위의 정책 방향은 기본료 폐지에서 보편적 요금 인하로 틀어졌다.

마지막 해결사 역할은 미래부가 맡았다. 인위적인 가격 통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선택약정 할인율 상향 조정(20%→25%), 2만원대 LTE 보편요금제 도입 모두 국정기획위의 요청을 받아 미래부가 주문제작한 정책이다. 시장 경쟁을 통한 통신비 인하가 바람직하다던 미래부의 기존 입장과 180도 배치되는 ‘반전 카드’였다.

치열한 고민 없이 공약을 급조한 민주당, 시민단체 압박에 휘둘린 국정기획위, 코드 맞추기에 급급했던 미래부가 만들어낸 졸속작이 이번 통신비 인하 대책이다. TV 속 막장 드라마는 쉽게 잊혀지지만 막장 드라마식 정책 결정은 국가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많이 번 만큼 뱉어내라’식의 기업 압박과 무분별한 시장개입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외치는 시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정호 IT과학부 차장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