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스토리] '십시일반'의 마법…알짜기업 찾아 가치에 투자하다
“정작 투자를 받아야 하는 기업들에는 왜 돈이 가지 않을까.”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의 신혜성 대표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생활을 거쳐 산업은행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회사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가 찾아낸 것이 바로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

[스타트업 스토리] '십시일반'의 마법…알짜기업 찾아 가치에 투자하다
창업하기 전 그의 직장은 산업은행이었다.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신 대표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가 1년여 만에 그만두고 동부증권에 입사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서 현대차에 입사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증권사 업무는 그에게 맞았다. 증권사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적응은 잘했지만 일은 고됐다. 새벽 5시에 출근해 그다음 날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업황에 따른 불안정함과 치열한 경쟁 등도 부담이었다. 좀 더 안정적이고 유학 기회도 노려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2007년엔 산업은행으로 옮겼다.

“기업금융 부서에 배치를 받아 기업들을 만나고 심사하고 대출하고 투자하는 일을 했습니다. 일이 재미가 있었죠. 보람도 있어서 천직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란 고민을 하게 됐다. 투자가 결정되는 과정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출이나 투자를 받으면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보다는 담보가 확실한 기업에 먼저 투자했다. 일하다 생긴 문제의식과 관심이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팬이 있는 기업,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 이런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가 증권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금융은 거대 기업을 제외하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1년여간의 준비를 거쳐 2012년 5월1일, 와디즈를 설립했다.

사막 같은 자본시장에 새 물줄기 만들자

자본시장은 냉혹하다. 신 대표는 ‘사막 같은 자본시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사막 같은 자본시장에 새로운 물줄기를 내고 싶다는 바람에서 와디즈(Wadiz)를 설립했다. 와디(Wadi)라는 말이 ‘사막의 강’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좋은 기업에 투자할 방안을 찾던 그가 해외 사례를 공부하던 중 찾아낸 것이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일부 외국에선 활성화됐지만 한국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제도의 제약도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이랑 말 그대로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아서 투자하는 방식인데, 후원형과 증권형이 있다. 후원형은 한국에서 가능했지만 증권형은 제도가 없어서 불가능했다. 이게 2012년 신 대표가 창업할 당시의 상황이었다.

“처음엔 당연히 후원형으로 시작했죠. 하지만 곧 증권형 시장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그런 논의가 일어나고 있었거든요. 2013년에 입법화가 진행됐고 2015년 법이 통과됐죠.”

시작할 땐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이었지만 지난해 1월 인가를 받으면서 국내 1호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 회사가 됐다. 지난해 와디즈를 통한 기업들의 연간 펀딩 금액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5월 말에 벌써 100억원을 달성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고, 건수도 늘어나고 있어서 올해 300억원 정도 펀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투자하라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나, 제품을 처음 만드는 기업이다. 신 대표는 이에 대해 ‘기록(record)이 없는 기업’이라고 했다. 투자할 때는 투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과거 기록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제품을 처음 만드는 사람이나 기업의 경우엔 이런 기록이란 게 거의 없다. 있어도 큰 의미가 없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이처럼 기록이 없는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투자다. 그렇다면 이런 투자는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그는 ‘수익률보다는 스토리’라고 설명했다. 돈만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제품이나 기업의 스토리를 접하면서 호기심과 애정이 생겨난 사람들이 투자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제품을 키워가는 것. 이것이 크라우드 펀딩의 묘미라고 했다. 그럼에도 끝내 수익률이 나오지 않으면 크라우드 펀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 수익률과 스토리가 모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렵다. 그렇기에 더 가치가 있다. 그래서 와디즈는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모토로 ‘사랑하는 것에 투자하라(Invest what you love)’를 권한다.

스토리가 전부는 아니다. 신 대표는 자신의 업을 ‘관계 기반의 일’이라고 정의했다. 와디즈를 설립하고 4년간 1700여 개 기업이 펀딩을 받았다. 성공률은 70%에 달한다. 평균 펀딩 금액은 2억원. 이 중에는 10억원 이상 펀딩을 받은 곳도 있다. 그가 볼 때 펀딩에 성공하고 성장하는 기업들은 ‘펀딩 이후에 투자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기업들’이라고 했다. 그냥 돈만 모집하고, 그것에만 만족하면 팬이 생기지 않고, 당연히 함께 성장할 원군이 없다는 의미다. 이 일이 왜 ‘관계 기반’의 일인지 이해가 갔다.

올바른 생각이 신뢰바탕으로 성장한다

와디즈의 역사는 확장의 역사였다. 와디즈가 설립될 당시엔 후원형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증권형 투자가 추가됐다. 초기엔 신생 기업의 제품에 주로 투자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영화 등 콘텐츠에 대한 크라우드 펀딩을 대폭 늘렸다.

콘텐츠 펀딩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너의 이름은’ ‘노무현입니다’ ‘판도라’ ‘재심’ 등 쟁쟁한 영화 작품들이 와디즈에서 펀딩을 받았다. 이 작품들은 펀딩이 진행되기 전에는 상영을 장담할 수 없었다. 영화 ‘사일런스’는 대작임에도 상영관을 못 잡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와디즈에서 확정금리형 투자 상품을 출시한 이후 하루 만에 목표금액인 3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감동적인 크라우드 펀딩 사례도 있었다. 2015년 고려대 앞 1000원짜리 햄버거로 유명했던 ‘영철버거 살리기 펀딩’ 사례다. 영철버거가 자금난으로 문을 닫자 2500여 명의 학생이 와디즈를 통해 6800여만원을 펀딩했다. 이 돈으로 영철버거는 고대 앞에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와디즈가 킥스타터보다 잘한다”

이제 그의 눈은 해외를 향하고 있다. 해외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많지만 그는 “자신있다”고 했다. 심지어 신 대표는 “우리가 킥스타터보다 잘한다”고도 했다. 킥스타터는 글로벌 크라우드 펀딩업체다. 인지도도 높고 펀딩 사례도 많을뿐더러 역사도 더 오래됐다. 신 대표에게 이유를 묻자 “우리가 더 혹독한 환경에서 펀딩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크라우드 펀딩이란 대부분 선진국에서만 해온 일”이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도입이 안 됐고 도입을 준비하는 국가들은 선진국에 비해 제도나 인프라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한국에서 사업을 해봤고 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와디즈가 선진국을 기반으로 성장한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보다 강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와디즈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1차적인 타깃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생각이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좋은 기업, 좋은 제품에 투자한다는 생각이 투자자와 기업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를 확산시켜 정말 좋은 회사가 투자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