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서 상여금 제외' 합의 깬 기아차 노조, 6년째 "임금 더 달라"
6년 가까이 끌어온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이 다음달 17일 나온다. 회사가 패소하면 일시 부담액만 3조원을 넘어 적자전환이 우려된다. 회사 측은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하는 노사 합의가 있었고, 인용될 경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만큼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주장 인정할 경우 부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1부는 20일 기아차 노조가 제기한 체불임금 청구소송의 최종 변론을 열고 다음달 17일을 판결 선고일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선고일까지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458명은 노조 주도로 2011년 10월 “연 750%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미지급 임금을 내놓으라”는 내용의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급 기간은 소송 제기 시점부터 3년(임금채권 소멸시효) 전인 2008년 10월부터 판결 확정 시까지다. 원고 승소로 확정되면 회사는 조합원 1인당 3년간 소급임금 최대 6600만원, 소 제기 이후 판결 확정 시까지 매년 최대 1200만원씩에다 소 제기 시점부터 법정지연이자(연 15%)를 가산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많이 받는 조합원은 1인당 1억원이 넘을 수 있다. 기아차의 일시 부담 금액은 3조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2조7456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최근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어 향후 실적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패소할 경우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신의칙’ 적용 판결 잇달아

노조 측은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이 대법원이 제시한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변론까지 신의칙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반면 회사 측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다 해도 최근 기아차가 국내외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신의칙 적용을 검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대법원이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근로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제한하는 법리다.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주요 요건은 △정기상여금일 것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등을 정해왔을 것 △근로자의 청구를 인용하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할 것 등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전까지 대부분 기업의 노사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 해석에 따라 임금을 정해왔다. 기아차 관계자는 “그동안 노조의 요구를 반영해 임금을 올려온 것은 상여금을 제외하는 합의에 기반한 것이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했다면 임금 인상폭도 그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하급심에선 신의칙을 적용해 근로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기각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988년 설립 이후 누적 순손실이 1조원을 넘고 향후 매년 100억원대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한진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사건에서도 법원은 조선업 불황을 근거로 신의칙을 적용했다. 지난 2월 두산중공업 사건에선 경영상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노조가 기존 합의를 무시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신의칙 위반”이라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통상임금

일상적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 근로기준법은 야근·주말특근 등 연장근로 시에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적으로(정기성), 근로자 모두에게(일률성), 추가 조건 없이 일한 시간에 따라(고정성)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민법 제2조).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 합의가 있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근로자의 청구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그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