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부메랑 맞은 마두로 정부
격화되는 반정부 시위
개헌 찬반 투표소에서 총격전 발생…석 달간 사망자 100명 넘어
유가 하락과 함께 경제 추락
외환보유액 100억달러 밑으로…연내 만기 외채도 37억달러 달해
베네수엘라 뒤엔 중국·쿠바
공산권 국가들이 물심양면 지원…"군 쿠데타·디폴트 가능성 낮아"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좌파 정부는 오는 30일 제헌의회 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를 강행할 예정이다. 우파 야권연합 국민연합회의(MUD)는 개헌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부를 압박할 목적으로 찬반투표를 했다. 이날 투표에는 710만 명이 참여해 반대표를 던졌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무력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반발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지난 4월부터 반정부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최소 100명이 숨졌다. ◆외환보유액 바닥…디폴트 위기 고조
고유가 시대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로 ‘퍼주기식’ 복지정책을 펼친 베네수엘라 정부는 유가 하락과 함께 재정파탄에 이르렀다. 민생 경제가 붕괴되자 정권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봉기했고,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폭정을 펼치는 포퓰리즘 독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극심한 식량난에 정국 혼란까지 가중되자 위기를 느낀 베네수엘라 국민 5만2000여 명이 미국 브라질 등 인근 국가에 난민 신청을 했다.
‘최후의 보루’인 외환보유액마저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이 100억달러를 밑돈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한때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꼽혔다. 하지만 2013년 마두로 대통령 취임 후 부채 상환 압박이 심해지면서 외환보유액이 99억7100만달러(7월20일 기준)로 쪼그라들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외화 수입 대부분을 국영 석유회사(PDVSA)의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국제 유가가 2014년 하반기 50달러 이하로 하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도 함께 추락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 규모는 37억달러에 달한다. 디폴트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현 정부 실정으로 민생 파탄
베네수엘라는 1999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뒤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고 식료품 의약품 등 생필품은 수입해 쓰는 구조가 굳어졌다. 경제체질 개선은 등한시했다. 차베스 집권 말기 무리한 가격통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차베스 대통령의 ‘사도(使徒)’를 자처하는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뒤엔 유가 폭락으로 정부 재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생필품을 수입하기도 어려워졌다. 베네수엘라 국민 대부분은 식료품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쌀 4㎏, 파스타 3㎏, 옥수수가루 2㎏, 검은콩 2㎏ 등을 담은 식료품 배급상자를 1만볼리바르에 사기 위해 밤새 줄을 서야 한다. 암달러시장 환율로 1만볼리바르는 2달러의 가치도 안 된다. 슈퍼에서 직접 식료품을 사기 위해선 20배 이상의 돈을 치러야 한다.
마두로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지난해 말 단행한 화폐개혁은 마두로 정부의 대표적 실정으로 꼽힌다. 초인플레이션에 대처하겠다며 100볼리바르 지폐 사용을 중단하고 새로운 고액권 지폐 여섯 종을 도입했다. 하지만 신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권 통용을 금지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베네수엘라 정부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군부에 식량 수입과 공급 독점권을 주고 기본 배급제를 시행했다. 군 고위 관계자들은 식량을 밀거래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 현 정권의 무능함 때문에 식량위기가 지속되면서 국민의 체중이 감소했다는 의미로 ‘마두로 다이어트’란 유행어가 나왔을 정도다.
베네수엘라 통화 볼리바르는 이제 지갑 대신 백팩으로 짊어지고 다니면서 내야 할 정도로 화폐 가치가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720%에 이른다. ◆중국 쿠바 등 공산권 국가들이 현 정권 지원
전문가들은 올해 당장 디폴트나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차베스 향수에 젖어 있는 ‘차비스타(차베스 열성 지지자)’들이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중국 쿠바 등 공산권 국가들이 마두로 정권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대책이지만 니카라과 등 카리브해와 중미 국가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거나 국영기업 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동원할 수도 있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베네수엘라 중앙대 교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금을 조달해 디폴트를 피하고 나면) 중국만이 유일한 자금원으로 남을 것”이라며 “중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지정학적 이해와 천연자원을 통제하려는 갈망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안정적 원유 공급을 조건으로 2007년 이후 베네수엘라에 50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최대 채권국이다.
마두로 대통령의 안전은 쿠바 정부가 파견한 군사 전문인력이 지키고 있다. 2000년 베네수엘라와 에너지협력협정을 체결한 쿠바는 베네수엘라에서 하루 5만3000배럴의 석유를 저렴하게 공급받는 대신 군사 및 교육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0명의 쿠바 군 장교와 4500명의 병사가 파견돼 있다. 쿠바군은 베네수엘라 군 정보 수집과 보안·방첩 요직을 장악하고 있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