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를 공식화하면서 정부는 다음달 초 발표할 세법개정안에 증세안을 반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의 임시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며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초고소득자·초대기업 증세’를 공식화하면서 정부는 다음달 초 발표할 세법개정안에 증세안을 반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의 임시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며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앞다퉈 법인세 인하를 선언한 가운데 한국은 이제 법인세 인상 논의를 시작하는 ‘역주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 확보라는 증세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최적의 생존과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순순히 불어난 세금을 감당할 것이냐, 국내 경제가 증세 부담을 딛고 지금 같은 회복세를 계속 이어갈 것이냐 등의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1) 세금 피하는 길도 많다

법인세 올리면…"해외서 돈 번 기업들 굳이 한국서 세금 내겠나"
23일 경제계에 따르면 한국의 법인세율이 올라가면 글로벌 시장에 많은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들은 해외 지사를 현지법인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재 기업들이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할 때는 해외 지사의 수익도 합산해 신고한다. 하지만 현지법인을 세우면 합산신고 의무가 사라진다. 현지법인의 소득은 현지 세율로 세금을 납부하면 된다. 현지 세율이 낮다면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 소득 자체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세수도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상당수 대기업은 지사를 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비교적 합리적 수준이었던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연구개발 세액공제’ 등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법인세율 인상과 연구개발 세액공제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런 혜택도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거둔 이익을 국내 본사로 보내지 않고 그대로 해외 법인에 쌓아두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해외 생산법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본사로 보낸 뒤 투자가 필요할 때 다시 그 돈을 받아 썼지만 법인세 부담이 높아지면 다른 방도를 찾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 해외 기업들 가만히 있을까

해외 글로벌 기업들도 ‘세금 구조조정’을 시도하거나 아예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국내 회계법인 관계자는 “과세구간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법인과 국내법인 간의 세금 구조를 다시 짜는 세금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글로벌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해외 법인이 속한 국가로 수익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한국의 세수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는 것도 걸림돌이 된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는 임원의 상당수가 과세표준 5억원을 초과하는 초고소득자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세금”이라며 “법인세와 소득세의 동반 인상은 대(對)한국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 기업 실적이 계속 좋을 수 있나

정부는 현재 기업들을 대상으로 거두는 법인세수가 상당기간 지속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누구도 기업들의 호실적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몰아치는 고비용 노동정책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여력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 또한 높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아무리 세율이 높아도 세수 자체가 늘지 않을 수 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기업들이 법인세 인하 이후 꾸준히 투자와 고용을 늘려왔는데, 법인세를 올리면 다시 줄이지 않겠느냐”며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일자리를 죽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안대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면 “자본은 해외로 29조원 빠져나가고 법인세수는 최대 2조3000억원까지 줄어들 것”(한국경제연구원)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고재연/김태호/안대규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