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지역이 폭우로 피해를 입은 가운데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비난 여론에 조기 귀국한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레밍' 발언에 대해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해명했다.

충북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 위원장인 그는 소속 의원 3명과 함께 지난 18일 8박9일 일정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관공서와 관광지를 둘러보는 유럽 국외 연수길에 올랐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22일 조기 귀국했다.

김학철 의원의 키워드에 담긴 속내를 알아보자.
KBS 뉴스화면
KBS 뉴스화면
'레밍' 발언의 숨은 뒷배경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말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너무나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알게 된 교훈입니다.

제게 쏟아지는 비난과 멸시, 모욕들 5천만 국민의 숫자만큼 받아야 할 겁니다. 네 놈이 바로 들쥐같은 놈이란 말부터 사퇴하라, 심지어 자결하란 말까지,,, 도의원이란 놈들이 자기들 지역에 물난리가 났는데 해외연수를 갔어? 이것만으로도 지탄받을 일인데, 국민을 레밍이라고 해? 저라도 당연히 욕했을 겁니다.

사람은 죽기 전에 말이 착해진다고 하는데 죽을 각오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이 사단을 불러일으키게 된 배경과 과정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충주가 고향(출생지는 제천 한수면)인 활석을 가공하는 회사의 경비원을 하셨던 아버지와 그 남편을 큰 아이가 13살이 되던 해 하늘로 떠나보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입니다. 아버지는 결혼생활 내내 단칸 셋방살이를 하셨고, 마흔 무렵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어린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사과 따는 일부터 공장일, 여관 청소일, 식당일을 마다않고 고생을 하신 분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아직도 식당에서 일을 합니다. 저 역시 오십이 되가는 나이에도 땅 한 평 주식 한 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일하시던 곳에서 어느 손님이 어머니께 부당하게 시비를 거는 모습(요새말로 갑질)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부당한 시비에도 항변하지 않으시고 죄송하다고만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화가 났고 서러웠습니다. 수 백 미터를 숨이 차 더는 달리지 못할 데까지 달렸습니다. 펑펑 울었죠.

저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공부 잘했으니까 갔겠죠. 그런데 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 반에 5~6명씩 주는 우등상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가 왜 그 흔한 우등상 한번을 못 받았는지를... 매 학년 올라가는 게 싫었습니다. 왜냐구요? 호구조사를 했으니까요. 아버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아버지 직업이 무어냐. 아버지 학력은 뭐냐. 집에 차는 있느냐. TV는 있느냐.

이런 성장과정을 저는 겪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 같은 아이들 만들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정치가가 되어야 해. 그래서 정치외교학과를 갔습니다. 그런데, 대학 2학년 무렵에 어머니께 큰 수술을 해야 하는 허리질환이 생겼습니다. 수술비가 만만찮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은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하고 물려준 아버지의 유일한 가산이던 집을 팔았습니다.

저 또한 학교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마다 않고 과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이때부터 목표 지향점이 흔들리게 됩니다.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모셔야 하나? 하던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그런 고민 속에 4년이 흘러버리고 수업을 번번이 빠지게 되고 과락이 생기고 휴학을 하게 되고, 95년에 졸업했어야 할게 1년 반이나 늦게 졸업했습니다. IMF를 맞은 시기에 졸업을 하다보니 취업도 되질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야 누구나 다 당하는 어려움이겠지만 IMF 전만해도 소위 SKY 졸업했다하면 취업 걱정은 별로 없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졸업해 대기업 다니던 선배 동기생들과는 다르게 수년을 백수나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서울 암사동에 10평도 안되는 보증금 3천만원짜리 반지하 다세대주택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그때 여의도가 직장이었습니다. 비교적 가정환경이 좋았던 아내는 처음엔 그것도 마다않고 살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나자 그 환경이 너무 싫었나 봅니다. 이사를 가자고 했는데 제가 무능력해 당장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계약기간은 채우고 가야 한다는 제 고집 속에 다툼이 날로 늘어갔습니다. 결국 아내와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을 해서 그 이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헤어졌습니다. 13년은 기다려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그리고 15년이 흘렀습니다. 자한당 소속은 다 기득권에 보수꼴통이다? 저 같은 서민 농민 노동자보다도 못 살고 어려운 과정 겪은 사람도 많습니다.

저야 공직자니까 저에 대한 신상은 당연히 공개 되어야 하지만, 어디에 쓰시려는지는 모르지만 제 가족에 대한 신상까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제 가정사 얘길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평생 단칸방에 살면서도 검소하고 정직하게 사셨던 아버지와 남에게 아무리 싫은 말을 들어도 참고 견뎠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거짓말을 평생 안 해보고 살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양심껏 살아왔고 남을 기만하려고도 않했으며, 술자리서 내뱉은 말이라도 어린아이에게 한 약속이라도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살아오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지방의원이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단 돈 10만원의 정치 후원금도 내지 못한 제게도 공천을 주신 분이 계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이 유혈낭자하게 난도질하신 아래 여학생리더십 캠프의 축사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 온 여러분은 이미 리더(지도자)이거나 리더가 되고픈 목표를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 리더가 되느냐보단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지를 짧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지도자에겐 두 유형이 있다. 늑대무리의 리더와 래밍무리의 리더! 래밍의 우두머리는 맨 앞에서 가지만, 늑대의 우두머리는 맨 뒤에서 간다. 래밍의 우두머리는 어리석어 무리 전체를 낭떠러지로 떨구지만, 늑대의 우두머리는 늙은 무리 약한 무리 강한 무리 모두를 돌보며 뒤에서 간다. 여러분은 늑대와 같은 우두머리가 되길 바란다”


'답답하고 속상' 놀러갈거면 사비로 가라? 놀러간다 생각한 적 없어…명예 하나로 살아와

저는 아직 제가 정치인이라 생각해 본 바가 없습니다.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었지. 저는 그 늑대 우두머리와 같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강적을 만나면 먼저 달려들었고 약자를 보면 측은지심이 더 생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옳다 생각하는 것이면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르다 생각되는 것이면 만금의 유혹도 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난 2월에 태극기 집회서도 이 사회의 3대 갑중의 갑인 국회의원, 언론, 법조계까지 들먹이며 그들을 미친개라고 까지 표현한 객기도 저의 그런 성격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언론에서 또 여러분이 외유(밖에서 놀다)라고 몰아붙이신 충북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의 이번 국외연수 프로그램은 제가 많은 책과 사전 정보를 통해 거점 지역을 정했고 여행사와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 최종 확정한 일정이었습니다. 저희 행정문화위원회는 문화, 관광, 예술, 체육, 문화재, 행정, 공보, 감사 등의 도정 업무를 소관하는 상임위입니다.

그래서 가장 짧은 기간 가장 효율적인 견문과 일정이 될 것 같은 남프랑스와 북이탈리아를 정했습니다. 도민들의 세비로 가는 공무였고, 예산을 알차게 집행하기 위해 10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고 여행사도 반년 전에 선정해 사전 예약을 하는 등 충실을 기했습니다. 세계적인 문화예술관광 선진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문화, 관광, 역사문화재, 예술제, 행정기관 방문 등을 편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연초에 가축 전염병과 탄핵정국으로 두 차례 연기를 했고 이번 7월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두어 차례 미뤄지는 바람에 일정이 항공관광업계 성수기인 7월에 잡게 되어 여행경비도 상승되고 환율마저 급등하는 등 여행사에게 매우 미안했습니다.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 또 각종 도와 지역행사 등으로 사실상 연수를 갈 수 없는 상황이고, 국내가 아닌 국외 연수인 관계로 2~3주만에 급조해서 변경추진하기도 쉽진 않았습니다.

외유라는 언론의 비판에 제가 정말 서운했습니다. 저는 평소 우리 충북과 제 지역구 충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문화 관광자원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굴뚝없는 산업이기도 하고,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발하는 것이 문화 관광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오래된 고도들에 남겨진 고대 중세 유적들과 오래된 산림과 공원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같이 조상들이 만들어 준 유물만으로도 그 국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도시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놀러 갈거면 사비로 가라구요? 추호도 놀러 간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그런 폄하가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또 지방의원이 마치 국회의원처럼 많은 특권을 누리는 집단으로 매도되는 것도 억울했습니다. 우리 충북도의회의 의원들 연봉이 5400만원입니다. 6급 공무원 평균 급여에도 못 미칩니다. 직급보조비, 출장수당, 특근수당 등 일반공무원들 받는 그런 수당 없습니다. 거기서 당비내라고 매달 20만원씩 빠져나가고 각종 상조금, 후원금 등 빠져나가면 한달에 350만원 남짓 통장에 찍힙니다. 음주단속 걸려 망신당하는게 두려워 거의 매일이다시피 대리운전기사님들께 십일조 내듯 1~2만원씩 드립니다. 광역의원이라 충주서 청주 오가며 또 지역구 돌아다니는 기름값도 만만찮게 지출됩니다. 제 성격상 누가 주는 돈 얼굴 두껍게 받아 넣지도 못하고 얻어먹는다 소리 듣기 싫어 공무원들하고 커피 한잔을 해도 제가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달 마이너스 통장 찍히는게 50여만씩 늘어나 이젠 2천만원 한도에도 다 차 갑니다. 그래도 전 혼자 사니까 집 팔아서 갚으면 되니까 꿋꿋하게 버텨왔습니다. 소명감으로...

당협 위원장 명령이라면 공천 못 받을까 걱정되어 설설 매어야 하고, 동네에 나가면 이거저거 해달라는 한도 끝도 없는 민원들 들어줘야 하고, 행사 하나라도 빠지거나 건네는 술 한 잔 안받으면 다음 선거 안나올려고 하느냐 하는 핀잔 들어야 하는데도 기초의원들은 한 달에 250여만원 남짓 받는 게 다입니다. 가정이 있는 분들이 식솔 거느리며 지방의원 할 수 있겠습니까? 집에 한 푼도 못 갖다주는 지방의원들 태반일 겁니다.

그중 일부 의원들의 일탈과 부적절한 행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조직인들 구성원 전원이 사고 한번 안치는 조직이 있습니까? 국회의원이 음주단속 걸렸다는 기사 들어보셨습니까? 음주운전을 안하는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적발에 안 걸리는 겁니다. 운전기사가 있으니까요. 지방의원들 비서 기사는커녕 재력이 있어도 거만하단 소리 나올까 두려워 직접 운전하고 다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지방의원을 너무나 잡습니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돌리자구요? 과거에 했다가 실패한 겁니다. 돈 안받고 명예직으로 하실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충북도의회가 다루는 일년 예산만 7조원이 넘습니다. 교육공무원 빼고 도청 소속 공무원 수만 해도 3500명이 넘습니다. 의원 한 명이 평균 수백명의 공무원과 2천억원이 넘는 사업예산을 살펴보고 다뤄야 하고, 또 민원해결사역도 해야 하는데... 칭찬은 인색하고 비난은 감당할 수 없도록 크고... 이런 풍토에서 능력있고 양심있고 실력있는 분들이 무보수 명예직 지방의원을 왜 합니까? 그나마 보수라도 있으니 하는 겁니다. 또는 더 큰 목표가 있거나.

일전에 설악산에 의회 연찬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동료의원과 직원들 단합으로 리조트 시설 내 노래방에를 갔는데 주인이 불친절하고 매너가 불쾌해 다른 노래방에 가자고 하고 나온 적이 있는데, 어느 언론에서 사실 관계를 호도해 “의원 갑질”이란 기사를 냈습니다. 나 의원이라고 노래방 주인에게 밝힌 바도 없고 술 가져오라고 갑질한 바도 없습니다. 정정보도 요청하고 싶었지만 기명도 안한데다 갑인 언론이라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 왜곡된 기사에 의해서 이번 사태에 갑질의원으로 호도 되어버린 겁니다. 명예 하나로 살아온 사람인데 너무나 참기 어렵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실망' 발가벗겨진채 조롱당하는 기분

소관 업무에 공보도 있기에 언론이 듣기에 불편한 얘기도 몇 번 했습니다. 특히나 저의 짧은 경력에도 있습니다만, 이름난 중앙언론은 아니어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던 친정이었던 모 주간지의 보조금 부적절 사용에 관한 내용을 파악하고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눈 감아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사는 사고 공은 공이인지라 더 독하게 다그쳤고 관련 예산도 후폭풍 감수하며 제가 전액 삭감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라는 표현으로 언론과의 관계도 많이 서먹해졌습니다.

제 평소 소신이 내가 부끄러움이 있는데 누굴 비판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기에 처신 하나에도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서류 하나 살펴 볼 시간도 부족해 화장실 들어가 보고 운전하면서도 보고 밥 먹으면서 보고 했는데,,, 저의 소신, 행적, 본질과도 너무나 다르게 매도되는 언론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눈 붙여본 게 채 10시간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난 여론에 항공기 티켓 부랴부랴 구하다보니 무려 24시간 걸리는 파리-방콕-홍콩-인천노선 운항하는 화물수송기 개조한 듯한 비좁은 타이항공 타고 돌아왔습니다. 출국장 빠져나오는데 TV서나 봤던 어마어마한 카메라 플래쉬가 한꺼번에 터집니다. 눈도 뜰 수 없을 정도로 섬광이 터지는 데 마치 발가벗겨진 채로 조롱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국민 세금 가지고 물난리 났는데 놀러나간 놈이 뭐가 그리 당당해서 눈빛이 저래? 언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상처드린 국민들께는 백번이라도 머리 숙이고 석고대죄 할 수 있지만 언론사 카메라에 대고는 절대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변명을 하겠습니다. 뭔 놈의 변명이 이리 길어? 제가 변명을 하면 또 언론은 이걸 가지고 물어뜯겠죠. 그래서 말 안하려 했는데 이렇게 된 바에 다 해버리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지난 탄핵 이후 저는 TV 뉴스보도를 잘 안봅니다. 네이버 다음도 잘 안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었습니다. 친박도 아니었지만 탄핵 정국에 이르러 친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박근혜 팔아서 새누리당 마크 달고 도의원이 되었는데 그 대통령이 비난을 받는다고 같이 편승하는건 정치도의나 인간적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출국 이틀 전 청주지역에 큰 비가 내렸고 SNS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지역구가 청주서 시간거리로 1시간 20여분 떨어진 충주입니다. 충주도 비가 오긴 했지만 큰 비는 아니었고 청주지역의 수해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었고, 일차적 수습은 청주시와 충북도 공무원들이 하는데 의원들이 현장에 방문하고 하다보면 오히려 의전과 보고 등으로 조기 수습에 민폐만 끼치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일에는 절차와 과정, 책임 권한 등의 사무 분장이 따라야 하는 법인데, 피해상황 집계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수를 또다시 포기하고 위약금으로 태반을 날려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연수 일정이 이틀만 더 늦게 잡혀 있었어도 안 갔을 것이고, 이틀 전에만 갔어도 바로 중지하고 돌아왔을 겁니다. 내가 도지사도 청주시장도 아닌데 하는 무책임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청주 미호천, 무심천, 명암저수지 등의 상황이 심각해 보이긴 했는데 다행이 비가 그쳐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주에는 우리 위원회에 두 분의 의원이 계신데 한 분은 처음부터 연수 안가시겠다 하셨고, 같이 가신 박봉순 의원께 전화를 드리니 하루종일 지역구 돌아보며 조치할 거 하고 여러 통장님들과 동직원들께 다 말씀을 하셨다 합니다.

다른 옥천 박한범, 음성 최병윤 의원께도 전화를 드리니 자신들 지역구에도 크게 물난리는 없다고 하셨고, 도 재난안전부서와도 통화를 해보니 연수를 가도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청주권 의원님들 중심으로 이뤄진 특별재난지구 촉구 성명에 대해선 동참을 하지 못해 상황 인식이 안이했습니다. 다만 SNS상에 올려진 충북대 앞 침수도로 상황이 마음에 걸리긴 해서 잠이 편히 오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짐도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옷가지 몇벌만 챙겨 넣었습니다.

수해에도 국외연수를 강행한 잘못이 있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불편한 시간이었는데 이게 이토록 큰 죄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국민을 레밍같단 생각이 든다란 발언으로 더욱 분노들 하시는 걸로 앎니다. 하필이면 비유를 해도 그걸 가져다 했을까 후회막급합니다. 앞서 설명한 며칠 전 제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 여운으로 남아서였던거 같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현지 도착해서는 곧바로 국내 언론 상황을 잘 살필 수가 없었고, 동료 의원님들과 직원들이 국내서 걸려오는 전화 소식들을 전언해 주는데 짜증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수해가 난 지 이틀이 경과하도록 우리 연수단의 출국여부를 물어오는 언론도 없었고, 매번 자연재해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전 공직자들과 국민들이 거기에만 몰입되어 본연의 일들도 다 팽개쳐야 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재난업무와 직접 소관된 위원회도 아니고 엄연히 공무 일정으로 온 것인데 여기가 서울, 부산도 아니고 파리인데 어떻게 바로 돌아오라는 것인가? 상식적이지가 않았습니다. 항공권 발권문제와 비용문제 등이 수반된 일이기에...

우리 시간으로 이미 새벽 3~4시가 지난 시간이라 일단 잠을 청하고 일어나 논의키로 하고 잠을 청했는데 역시 잠이 잘 안왔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경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니 여기저기 많은 부재중전화가 찍혀 있어 몇몇 언론과 통화를 나눴습니다. 시차적응도 아직 안된데다가 심신이 매우 피곤한 상태라 논리나 어휘가 정제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 와중에 KBS 기자와 통화 중에 문제의 레밍발언이 튀어 나왔습니다.

레밍신드롬, 즉 편승효과를 얘기하고자 한 것입니다. 수해 피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파악을 못하고 있었기에 지난 가뭄 때 충남도 의회연수 등 통과의례처럼 보도되는 그런 가십기사 취재를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자는 처음부터 ‘이건 인터뷰에 쓸 것이다. 보도 전제다‘라는 사전통고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기자라 스스럼없이 우리 입장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요지로 통화를 했는데 통화 말미에 다른 데서 다 해서 보도를 안 할 수가 없다 라고 해서 수해에도 외유나갔다란 보도를 하겠단 얘기구나 생각하고 “보도 안해주면 더 좋구요”라고 말을 한 것 같습니다.

한 언론사가 보도를 하면 뒤늦게 보도하는 언론들의 기사 제목과 내용이 사실과는 동떨어지게 점점 높아지게 되는 것, 전후사정 배경도 이해안해주고 다른 곳에서 썼으니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라는 보도행태가 레밍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레밍같단 생각이 든다”와 “국민들이 레밍같단 생각이 든다. 집단행동하는 설치류”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실례로 전자의 표현은 저명한 이들의 칼럼이나 논문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뉘앙스가 전혀 다릅니다. 제가 편집되었다 주장하는 것은 바로 기자가 레밍을 몰라서 무엇이냐고 묻길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서식하는 집단행동하는 설치류다”라고 답해 준 과정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전자에 과정을 빼고 설치류를 가져다 붙인 겁니다. 저렇게 되면 처음부터 제가 ‘국민은 설치류 레밍같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또 많은 언론들이 편승되어 시궁창쥐(이건 신종 무균질쥐인가요? 레밍이 시중창쥐란 얘긴 못 들어봤습니다)니 들쥐니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의 기사로 확대재생산을 했습니다.

저는 1만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72시간이 지나서 돌아왔습니다. 그 시간동안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저들 지역구에 일어난 최악의 물난리 피해 밖에 놀러간 놈들로 매도되어 있었고 국민적 공분을 산 죽일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월호' 언론이 저지른 잘못은 누구도 자성안해

막말을 한 것일까요? 불편한 말을 한 것일까요? 세월호를 또 집어넣었습니다.

평소 제 생각입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진실? 사건 주범들과 하늘만이 알 겁니다. 하지만 구조 과정에서 우리 언론이 저지른 엄청난 잘못은 어느 언론도 자성하지 않습니다. 많이 국민들이 기억할 겁니다. 사건 당일 오전부터 종편을 비롯한 수많은 방송들이 속보 타전했던 헤드라인 기사를... 뭐라 보도했습니까? “세월호 침몰 전원 구조”였잖습니까? 만약 어느 한 언론이라도 사건 현장에 제대로 연락을 취해 사실 보도만 했더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조했을 것이고, 이런 국민적 갈등도 없었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노란리본요? 저도 누구보다 먼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 달아줬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노란리본 아직도 달고 다니시는 분들 부모님 돌아가셔도 3년간 달고 다니실거죠? 2년 후 세월호처럼 바닷물살 사나운 곳도 아닌 강에서 발생한 중국 동방지성호 침몰로 458명 중 고작 14명이 구조된 참사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는 단 3일만에 구조포기 선언하고 인양조치했습니다.

또 JTBC 손석희가 선동한 터무니없는 “에어포켓”이니 “다이빙벨”이니 하는 보도에 우리 국민들이 냉정한 태도만 보였더라도 삼성중공업 등이 출동시킨 플로팅도크로 세월호가 수장되기 전에 건져 올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선동보도로 차갑고 암흑같은 바다에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치케 한 장본인은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부강한 국가가 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또 그걸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한데, 언론사는 무수히 많아도 참된 언론은 드문 것 같습니다.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의 그늘에 기생하려는 매춘언론과 레밍언론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재벌, 정치인이야 언론이 때려잡고 검경이 때려잡고 국민이 표로서 갈아치울 수 있다 하지만, 재벌 정치인 검경조차도 갑이고 두려운 존재라 생각하는 언론은 누가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그런 평소 생각과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비몽사몽간에 정제되지 못하고 국민들께 너무나 큰 상처와 분노를 안겨드린 표현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불편한 비판에 대해서는 관용없이 처참하게 짓밟아

꾹 참으려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제 얘기를 공감하고 들어줄 수 있는 페이스북 친구 5천명, 1만명 될 때까지는 이런 소리 안하려고 했습니다. 왜냐면 저도 언론의 힘을 얻어야만 하는 선출직이니까요. 이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눈을 떠보니 유명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뤄주던 안 다뤄주던, 제가 더 정치를 할 수 있던 없던 상관없이 제 얘기를 읽어줄 많은 이들이 생겼으니까요. 애초부터 제가 정치를 배우고 그 길을 가고자 할 때부터 신분과 지위따위엔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의정활동도 재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하다보면 또 맡겨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해 왔습니다.

자유주의가 지켜지려면 불편한 비판에도 관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언론과 대중은 불편한 사실과 비판에 대해선 거론조차 못하게 하고 또 그걸 얘기하려는 자는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전체주의 국가의 행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래도 우리가 자유주의 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저는 사지거열형 속에서도 자유를 외치다 죽은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법치주의 국가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판결 후조사/재판을 진행하는 나라입니다. 법치를 하는 어느나라에도 이런 해괴망측한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탄핵을 찬성하고 주도한 국회의원들을 향해(감히 공천권 쥐고 있는 우리에게 따까리 도의원 따위가) 미친개라고 외쳤습니다. 미친개는 사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응징해야 하지만 폭력적 방법이 아닌 표로써 외침으로써 응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론은 거두절미하고 “국회의원 미친개 사살해야” 막말한 도의원으로 아주 간단명료하게 제목을 뽑았습니다. 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마저도 비호하고 두둔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게 아닙니다. 수사와 재판도 없이 탄핵을 먼저 하게 되면 국정 공백이 불가피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때도 그러했듯이 지지자와 비지지자가 나뉘게 되어 국민갈등은 극에 달하고 국가의 성장은 멈춰지고 국운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고, 또 이후에도 이것이 사례가 되면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반대파와 적국의 모략과 음모에 의해 또다시 탄핵정국을 맡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수해로 물난리가 났는데 해외연수 나갔다고 소명절차도 거치지 않고 단 3일만에 제명시킨다는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이 나라 법치주의 국가 아닙니다.

추경안 통과 해달라고 아우성치던 더민주당 국회의원들 예산안 통과하던 날 자리 안지키고 다 어디가셨답니까? 지역구도 아니고 소관 상임위도 아닌 도의원들 다 제명했으면 같은 잣대로 사상 최악의 수해에도 휴가 복귀해서 현장에도 안나가본 지금 대통령이라 불려지는 분, 수해복구가 아직 진행중인 데도 외국 나가신 국회의원들, 휴가 일정 맞춰서 외유나가신 높은 분들, 최악의 가뭄 상황인데도 공무로 외유나가셨다 돌아오신 각 단체장들 다 탄핵하고 제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6급공무원보다 못한 대우받는 애꿎은 도의원들 희생양 삼아놓고 사지로 몰아넣었으면 최소한 양심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정치란 정무감각으로 하는거 아닙니다. 양심과 용기 그리고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남의 불행을 틈 타 언론에 얼굴 한 번 더 비추고, 그를 이용해 감성팔이해서 나의 유불리로 삼는건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모리배나 할 짓입니다.


'대통령' 잘못된 길 가는데도 내가 뽑았다고 무조건 박수치지 마라

국민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선출직 의원이 국민을 들쥐, 설치류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는게 병이고 만화의 근원이 입이라고 제가 장거리 비행 끝에 쏟아지는 외유비난에 부지불식간 비몽사몽간에 헛소리를 했습니다. 레밍이란 말에 분노하셨고 상처받으셨다면 레밍이 되지 마십시오.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내가 뽑았다고 무조건 박수쳐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게 경계하시고,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를 맹목적으로 믿고 옮기지 마시고, 상사가 잘못된 지시를 한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거부하십시오. 그게 레밍이 되지 않는 길입니다.

함께 공존하고 살 길을 찾는 길을 모색하십시오. 더는 이 나라 좌우로 대립되어 서로의 주장을 배격하고 서로에게 상처될 말과 행동 하지 마시고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반도 국가 아닙니다. 휴전선으로 차단된 섬나라이지. 더 이상의 갈등과 대립은 국민 모두가 바다로 빠져죽게 되는 일입니다. 다 용서했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용서해 주시고, 문재인 대통령 용서해 주십시다.

명 짧은 놈 우리 아버지보다는 5년을 더 살았습니다. 무수한 욕과 비난을 얻어먹었으니 더 살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