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가 심상치 않다. 작년 말 121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110원대로 떨어지면서 ‘달러 재테크’에 나섰던 투자자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약(弱)달러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큰 유틸리티·철강·식음료주에는 호재, 자동차 등 일부 수출기업주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재테크 인기 시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3원 오른 1115원30전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소폭 올랐지만, 지난 3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작년 12월 121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7% 가까이 떨어졌다. 유로 등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1일 93.865로 추락해 1년 만에 94선이 무너졌다.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 게 달러 약세를 부추기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1.6%로 예상치(2%)를 크게 밑돌았다. 이에 따라 선물시장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50% 미만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약달러 현상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한국의 수출 호조로 원화 강세가 예상돼서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달러 약세 현상이 당초 예상한 7~8월을 넘어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1100원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인기를 끌었던 달러 연계 재테크 상품은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달러 상품 불패론’의 배경이었던 ‘2017년 미국 금리 인상 본격화’가 깨졌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선물 가격 변동폭의 두 배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KODEX 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는 이달 들어 4.9% 떨어졌다. 올 들어 누적 수익률이 -14.5%까지 추락했다. 지난 5월 말 105억1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개인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99억9000만달러로 줄었다.

◆식음료·철강·정유주 호재

투자자들의 관심은 달러 약세가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에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하락폭이 크지 않은 만큼 외국인 투자자 수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홍 팀장은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팔고 있지만 약달러가 이를 완화해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1차적으로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작년 하반기 이후 주가가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진 한국전력 등 유틸리티주가 대표적이다. 밀 콩 설탕을 수입하는 CJ제일제당 대상 등 식음료 업체도 원자재 수입 부담을 덜 수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철광석과 석탄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달러 약세로 원자재 가격과 신흥국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정유 철강 등 경기민감주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코스피지수가 0.47% 하락하는 약세장에서도 의약품(2.38%) 음식료품(0.37%) 철강금속(1.17%)업종이 일제히 상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달러 약세는 수출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수요가 넘치는 정보기술(IT)주보다는 자동차 해운 등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더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