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오뚜기
최근 노동시장의 대표 화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오뚜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였던 인천공항에서 정일영 사장은 ‘비정규직 연내 100% 정규직화’를 보고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공부문에서 ‘임기 내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아젠다가 급속히 확산한 계기다. 비정규직 비중이 1.16%인 오뚜기는 ‘일자리창출 상생협력 우수중견기업’으로 27, 28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통령과 기업인의 만남에 특별 초청됐다. 하나는 공공부문에서, 다른 하나는 민간기업에서 정규직화 우등생으로 규정되는 모양새다.

우등생 따라하기의 부작용

잘 하고 있는 곳, 잘 할 수 있는 곳을 부각시키는 것은 우등생을 지렛대 삼아 정책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전략일 게다. 품을 덜 팔고 많은 효과를 얻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타박할 대상은 아니다. 우등생을 전면에 내세워 ‘뒤를 따르라’고 외치면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못 따라가면 알지’라는 암묵적인 압박과 ‘따라하는 것은 자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추진력을 강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밑으로부터(보텀업)가 아니라 위로부터(톱다운)라는 점에서 문제를 노정한다. 인천공항은 대통령 보고 이후 정규직화를 본격 추진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노(勞勞) 간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100%의 정규직화를 위한 밑그림도 없이 발표부터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통령 보고 이후 2개월여 이후인 지난 17일에야 정규직 전환을 위한 컨설팅 용역을 체결했으니 준비 없는 깜짝쇼(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라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그룹 순위 1~14위가 참석 대상인 대통령과 기업인의 만남에 오뚜기가 초정되자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대부분 기업은 노심초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축적해온 인사·노무관리 시스템을 통째로 손질해야 할 처지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상승과 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저하를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단절보다 축적·계승이 중요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존경보다 야속함이 앞서 기억되는 은사들이 있다. “는 1등 하는데 너는 그렇게 못해”라는 비교는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성적이라는 잣대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교육의 결과는 자명하다. 잠재력 발현은 기대난이고 창의력과 적극성은 취약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성난 촛불 민심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역사적 책무가 엄정하다는 인식은 적폐 청산이나 과거와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임기 내에 꼭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선(先) 발표 후(後) 보완’의 패턴으로도 나타난다. 계승발전은 변혁보다 재미없는 일이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관심을 이끌어내는 폭발력이 약해서 도드라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인천공항과 오뚜기는 기존 관행과의 단절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관행이 타당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지금은 AI(인공지능)와 IoT(사물인터넷) 등으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다. 당연히 다양성과 창의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때 1등을 잣대로 재단한 옷은 과연 우리에게 유용할까.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가치를 일거에 부정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선진국이나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사회의 전체 틀을 바꿔 국가적으로 축적해가는 체제를 갖춰 나가야 한다(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조언은 그래서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