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비참한 중세 현실에 대비시킨 공상향(空想鄕)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합니다. 점심 식사 전에 세 시간 일하죠. 점심 먹고 나서 두 시간 쉬고는 다시 세 시간을 일하는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오후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 8시간 잠을 자죠. 정부의 최고 목적은 시민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제공하는 것입니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토머스 모어(1478~1535)가 1516년 발표한 소설이다. 원제목은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다.

유토피아(utopia)는 ‘u’와 ‘topia(장소)’의 합성어다. 그리스어에서 ‘u’는 ‘없다(ou)’는 뜻과 ‘좋다(eu)’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는(ou) 곳(topia)’을 뜻하지만, 동시에 ‘좋은 곳(eutopia)’을 의미한다.

모어는 헨리 8세의 명령으로 양털 수출을 위해 지금의 북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걸쳐 있는 플랑드르 지방에 파견됐을 때 이 책을 썼다. 영국·플랑드르 통상조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해 왕에게 신임을 얻었고 1529년엔 대법관이 됐다. 하지만 왕이 앤 볼린과 재혼하기 위해 가톨릭과 결별하려는 것을 반대했다가 처형당했다.

화폐·사유재산제 금지…균등 분배

[다시 읽는 명저] 비참한 중세 현실에 대비시킨 공상향(空想鄕)
《유토피아》는 당시 영국 국민의 처참한 삶을 고발하는 1부와 이교도(異敎徒)들이 사는 유토피아 섬을 소개하는 2부로 나뉘어 있다. 15세기 말 영국에선 양모 가격이 크게 오르자 지주들이 양을 더 많이 키우려고 밀밭을 초지로 바꾸고 울타리를 쳤다(인클로저 운동). 농민들은 쫓겨나 부랑자로 거리를 떠돌았다. 절도범이 돼 교수형에 처해지는 농민도 부지기수였다. 모어는 주인공인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의 입을 빌려 비참한 현실을 에둘러 얘기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요인이 따로 있다. 바로 양이다. 얌전하고 조금씩 먹던 유순한 양들이 이제는 무서운 식욕으로 사람까지 먹어치우고 있다.”

2부에서 묘사된 유토피아 섬은 54개 도시로 이뤄져 있다. 각 도시는 6000가구로 구성돼 있고, 모든 조건이 거의 동일하다. 나라에는 원로회의만 있을 뿐 정치의 중심은 각 도시다. 이곳에선 불행의 근본 원인이 탐욕이라는 이유로 이를 부추기는 화폐와 사적 소유가 금지된다. 누구나 근면하게 일해야 하며, 모든 것이 균등하게 분배된다. 의무 노동(하루 6시간), 공유제, 절제된 생활 등을 통해 나태 탐욕 교만 등 인간의 단점을 극복하고 모두가 평등한 삶을 누린다.

유토피아의 기원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철인(哲人)이 다스리는 이상국가(칼리폴리스)다. 《유토피아》는 후대에 생시몽 푸리에 등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에른스트 블로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등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유토피아》는 특히 최근 1~2년 사이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의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도둑들을 교수형에 처하는 대신 모두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주는 것이 낫다”는 구절이 근거라는 것이다.

개인 사생활 없는 거대한 감옥국가

하지만 모어의 집필 의도와 행간(行間)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는 국내 번역본은 거의 없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분명 이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소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이상향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가혹하고 부조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유토피아》를 읽는 최악의 방법은 여기에 그려진 사회가 저자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청사진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것”(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이라는 지적도 있다.

유토피아의 국가 철학은 집단적인 행복 추구다. 전체주의 국가가 강요하는 미덕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모든 국민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생긴 도시에서 똑같은 집에 산다. 심지어 마을회관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허락 없이 거주지를 벗어나 여행하다 적발되면 범죄자가 되고, 재범자는 사형을 피할 수 없다. 간통을 하다 잡히면 노예 신분으로 떨어지고, 이 역시 재범이면 사형에 처해진다. 유토피아는 사생활이 없는 거대한 감옥국가인 셈이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는 이상향(理想鄕)이 아니라 비참한 현실에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공상향(空想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모어는 이상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또 한편으론 그것을 무리하게 추구할 때 초래될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이상향은 역사 발전 과정에 따라 변모하며, 그것을 만드는 것은 인류 모두의 과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