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수사 8개월만에 '블랙리스트' 인정…"헌법정신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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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어떤 명목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직권남용·위법행위…합리성 없어"
'비정상의 정상화' 주장엔 "투명하게 진행했어야"…항소해 공방지속 전망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정당성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 박영수 특검팀이 출범한 이후 8개월 만에 법원 판단이 내려졌다.
'어떤 명목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위법행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이 정치검열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관리한다는 의혹은 과거에도 수차례 제기됐으나 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것은 특검이 처음이었다.
출범 전 일각에서는 특검이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를 위시한 국정농단 사범 등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 특검법 취지와 빠듯한 수사 일정을 고려하면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파헤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특검은 출범 초부터 수사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의 자택을 비롯한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이튿날 정관주 전 1차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것이다.
이후 12월 28∼30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문체부 김종덕 전 장관과 김 종 전 2차관을 잇달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소환 조사를 바탕으로 증거를 쌓은 특검은 올해 1월 7일 정관주 전 차관과 신동철 전 비서관, 8일 김종덕 전 장관과 김상률 전 수석을 직권남용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이들 가운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이들이 처음이었다.
이후 특검은 김종덕·정관주·신동철 3명을 구속했고, 이들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윗선' 조사를 이어갔다.
특검은 1월 17일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을 직권남용 등의 피의자로 소환했고, 하루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록 헌법상 형사 불소추 특권 때문에 재판에 넘기지는 못했지만, 특검은 블랙리스트 윗선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이다.
재판에서 김기춘 실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반격에 나섰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으며 만약 예술계 지원배제 업무를 했더라도 편향된 정부 지원을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논리를 폈다.
반면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두고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 통치 행위상 상정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김기춘 전 실장에게 7년, 조윤선 전 장관에게 6년 등 무거운 실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조 전 장관의 경우 구체적인 개입 행위를 찾기 어렵다며 이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별 선고 결과를 밝히기에 앞서 블랙리스트 자체가 특검법상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특검 관련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사건이므로 수사 경위를 볼 때 해당한다는 취지다.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일부 피고인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본격 판단에서도 법원은 블랙리스트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위법행위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재판부는 "지원배제는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비정상의 정상화' 주장과 관련해선 "좌편향 시정을 통해서 정책 결정을 시행한 것으로 평가받으려면 투명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며 "이 사건은 반대로 은밀하고 위법한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제 잣대도 '야당 지지', '세월호 시국선언',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등 자율적 심사과정에서 적용돼야 할 기준과도 무관해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적법절차를 준수했어야 함에도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지원배제를 시행해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특정 개인의 이익 추구·실현을 위한 다른 국정농단 사건과는 달라서 이를 형량 산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논란이 종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측이 첨예하게 공방을 벌였던 만큼 이 사건은 항소심과 상고심을 모두 거쳐야 확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리적 판단이 중요한 사건인 만큼 이 경우 상급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도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jaeh@yna.co.kr
'비정상의 정상화' 주장엔 "투명하게 진행했어야"…항소해 공방지속 전망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정당성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 박영수 특검팀이 출범한 이후 8개월 만에 법원 판단이 내려졌다.
'어떤 명목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위법행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이 정치검열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관리한다는 의혹은 과거에도 수차례 제기됐으나 이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것은 특검이 처음이었다.
출범 전 일각에서는 특검이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를 위시한 국정농단 사범 등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 특검법 취지와 빠듯한 수사 일정을 고려하면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파헤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특검은 출범 초부터 수사를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26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의 자택을 비롯한 10여 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하고, 이튿날 정관주 전 1차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것이다.
이후 12월 28∼30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문체부 김종덕 전 장관과 김 종 전 2차관을 잇달아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소환 조사를 바탕으로 증거를 쌓은 특검은 올해 1월 7일 정관주 전 차관과 신동철 전 비서관, 8일 김종덕 전 장관과 김상률 전 수석을 직권남용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이들 가운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이들이 처음이었다.
이후 특검은 김종덕·정관주·신동철 3명을 구속했고, 이들을 상대로 블랙리스트 '윗선' 조사를 이어갔다.
특검은 1월 17일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을 직권남용 등의 피의자로 소환했고, 하루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록 헌법상 형사 불소추 특권 때문에 재판에 넘기지는 못했지만, 특검은 블랙리스트 윗선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김기춘 전 실장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이다.
재판에서 김기춘 실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반격에 나섰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도 없으며 만약 예술계 지원배제 업무를 했더라도 편향된 정부 지원을 바로잡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논리를 폈다.
반면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두고 "대통령과 비서실장 등 통치 행위상 상정할 수 있는 국가 최고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김기춘 전 실장에게 7년, 조윤선 전 장관에게 6년 등 무거운 실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조 전 장관의 경우 구체적인 개입 행위를 찾기 어렵다며 이 부분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별 선고 결과를 밝히기에 앞서 블랙리스트 자체가 특검법상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특검 관련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사건이므로 수사 경위를 볼 때 해당한다는 취지다.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일부 피고인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본격 판단에서도 법원은 블랙리스트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위법행위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재판부는 "지원배제는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비정상의 정상화' 주장과 관련해선 "좌편향 시정을 통해서 정책 결정을 시행한 것으로 평가받으려면 투명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며 "이 사건은 반대로 은밀하고 위법한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제 잣대도 '야당 지지', '세월호 시국선언',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등 자율적 심사과정에서 적용돼야 할 기준과도 무관해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적법절차를 준수했어야 함에도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지원배제를 시행해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특정 개인의 이익 추구·실현을 위한 다른 국정농단 사건과는 달라서 이를 형량 산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논란이 종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측이 첨예하게 공방을 벌였던 만큼 이 사건은 항소심과 상고심을 모두 거쳐야 확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리적 판단이 중요한 사건인 만큼 이 경우 상급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앞으로도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