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형량에도 불만…"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표현의 자유' 침해 인정은 긍정적 평가
문화계, 조윤선 '블랙리스트' 무죄에 "실망스러운 판결"
문화계는 법원이 27일 이른바 뮨화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관련 혐의에 대해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실망스럽다"며 일제히 불만을 쏟아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선고형량도 이번 일의 심각성에 비춰 너무 가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화계는 그러나 법원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이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점을 인정한 법원 판단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와 법 감정에 어긋나는 재판 결과"라고 평가했다.

윤 회장은 법원이 김 전 실장 등에게 선고한 형량에 대해서도 "이런 일(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이 문화 쪽에서 어떤 결과를 빚는가에 대해 법원이 그 심각성을 가볍게 여긴 게 아닌가 싶다"면서 "이런 일에 대해 엄한 잣대를 적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사전준비팀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김한청 한국출판인회의 기획정책위원장은 조 장관이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데 대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실장에 대해 검찰 구형량(징역 7년)보다 낮은 징역 3년이 선고된 데 대해서도 "실제 지원배제 정책으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계 입장에서는 형량이 적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최원식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침해한 행위를 엄중히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라면서도 "검찰 구형보다 형량이 전반적으로 경감되고 조 전 장관은 심지어 석방돼 시민적 상식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의 검열 및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 등을 기록하는 검열백서를 발간하기 위해 연극인 중심으로 구성된 민간위원회인 '검열백서위원회'에서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이번 판결은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가 있었는데도 실행한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없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들의 법 감정과 실제 법의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 법원이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다이빙벨'을 비롯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달아 배급하다가 폐업위기에까지 처했던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선고된 형량을 보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를 단순히 직권남용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라며 "추가로 청와대에서 나온 문건 등에 대한 보강 조사를 통해 위법을 더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문체부 안에서도 블랙리스트 척결위원회를 만들어 내부 조사를 진행 중인데 블랙리스트에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재판 결과가 이 정도라면 이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하고 그간의 사회적 적폐를 해결하는 데 있어 건강하지 못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계, 조윤선 '블랙리스트' 무죄에 "실망스러운 판결"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번 재판이 끝이 아닌 만큼 앞으로 활동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추가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청 위원장은 "이번 재판은 국가적 폭력이 입증됐다는 하나의 계기이며 진상조사를 위한 하나의 시작"이라면서 "다음주 발족하는 진상조사위에서 재판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실까지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후대에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블랙리스트 자체가 헌법을 명백하게 침해한 것임을 인정한 부분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여러 가지 증거 불충분으로 일부 유죄가 인정되지 않거나 형량이 감형된 부분은 유감이다.

증거 조사를 통해 더 확실하게 밝혀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식 이사장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어떻게 처벌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가 선언으로만 있고 이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 등 제도가 미비하다.

선언만 해놓고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뜻"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구체적 제도와 규칙이 정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김희선 김계연 기자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