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불신의 시대와 블록체인
지난 주말 중복(中伏)이라 가족들과 삼계탕집을 찾았다. 깔끔하고 정갈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최근 조류인플루엔자로 수천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당하고, 병에 걸린 닭이 일부 유통된 사례가 있다는 뉴스가 기억나 살짝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류인플루엔자 및 구제역 같은 이슈가 발생할 때 소비자는 어떤 제품을 믿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무조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닭고기나 돼지고기 값이 폭락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식재료를 공급해온 농가와 기업도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신이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거래 기술에 대한 관심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디지털 공동 거래 장부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거래 내역을 공유하는 공개 장부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장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모두 업데이트한다. 거래에 참여한 모든 사용자의 장부를 동시에 조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장부를 위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블록체인은 데이터와 거래에 신뢰와 투명성을 크게 높인다고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미국 유통업체 월마트가 돼지고기 유통에 IBM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했다. 농장에서 공장까지 돼지고기가 유통되는 동안 저장온도, 유통기한 등의 데이터를 공유해 상한 고기의 유통을 사전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가짜 반도체나 가짜 다이아몬드가 유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세계 최대 해운회사인 머스크는 운송과 통관 관련 문서의 부정을 줄이고, 기존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빠르게 컨테이너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IBM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품목은 비트코인과 같은 전자화폐부터 오프라인상에서 거래되는 식품까지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 IBM이 3000여 명의 글로벌 기업 최고 임원을 대상으로 한 ‘C-스위트 스터디’ 조사 결과 인터뷰에 응한 기업의 33%가 블록체인 도입을 고려하고 있거나 이미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은 신뢰 관계를 빠르게 수립할 수 있다. 큰 기업도, 작은 업체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 관계에 참여해 경제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품의 이력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안심되는 일 아닌가.

장화진 < 한국IBM 사장 kgm@kr.ib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