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는 ICBM급…김정은 "미 본토 전역이 우리 사정권"
재진입 기술 회의론…전문가 "고각발사로는 확보 못해"
北미사일, 美본토 도달 능력…'대기권 재진입' 의문 여전
북한이 '화성-14형' 미사일 시험발사에 거듭 성공함으로써 미국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능력을 과시했지만, 이를 실전 운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거리 면에서는 ICBM급 기술을 입증했지만, 대기권 재진입(re-entry)을 비롯한 핵심 기술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8일 밤 ICBM급 미사일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것이 뚜렷이 입증되였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화성-14형의 사거리만 보면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중앙통신은 이번 시험발사에서 화성-14형의 최고고도와 비행거리가 각각 3천724.9㎞, 998㎞라고 밝혔다.

발사각을 최대한 끌어올린 고각 발사를 한 점을 고려하면, 30∼45도의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사거리가 9천∼1만㎞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정도 사거리의 미사일을 이번 시험발사 장소인 자강도에서 쏘면 미국 동부와 남부를 제외한 본토 대부분 지역에 닿을 수 있다.

해군기지가 있는 서부 연안 샌디에이고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주 전역은 물론, 5대호 주변 시카고 같은 대도시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의 사거리에 도달한 것은 추력이 큰 엔진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화성-14형의 1단 주엔진은 북한이 지난 3월 18일 연소시험에 성공한 액체연료 엔진이다.

당시 연소시험을 참관한 김정은은 '3·18 혁명'이라고 부르며 극찬했다.

북한은 3·18 혁명 주엔진에 4개의 보조엔진을 달아 화성-14형의 비행 안정도를 높였다.

북한이 1차 시험발사 후 이달 초 공개한 화성-14형 시험발사 영상은 미사일이 조금의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과 같은 고난도 기술을 확보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북한이 아직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ICBM급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대기권 밖으로 나간 미사일이 다시 들어갈 때 섭씨 6천∼7천도의 고열과 압력 속에서 탄두를 보호하고 탄두부가 일정한 형태로 깎이도록 함으로써 예정 궤도를 오차 없이 비행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北미사일, 美본토 도달 능력…'대기권 재진입' 의문 여전
북한이 고각 발사 방식으로 ICBM을 개발하는 한,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각 발사를 하면 엔진 추력의 상당 부분이 중력을 이기는 데 소모돼 대기권에 다시 들어갈 때 ICBM급 미사일의 속도(마하 20 이상)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기권 재진입 속도가 낮으면 발생하는 열과 압력도 낮을 수밖에 없어 재진입 기술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정상 각도로 발사된 미사일이 대기권에 비스듬히 재진입하는 것과는 달리 고각 발사된 미사일은 거의 수직으로 재진입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으로 거론된다.

ICBM은 대기권에 비스듬히 재진입하기 때문에 탄두부의 균일한 삭마를 위해서는 탄두부가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수직으로 재진입하는 미사일로는 이런 기술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상민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원은 화성-14형을 분석한 논문에서 "고각 발사 방식으로는 재진입과 동일한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며 북한이 ICBM 재진입 기술을 갖췄을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북한이 ICBM을 확보할 경우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 6번째 ICBM 보유국이 되지만, 아직은 이 단계가 아니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도 재진입 기술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북한이 ICBM 기술을 추구하는 게 실제로 미국 대도시를 타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 군사적 위협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거두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재진입 기술이 없더라도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화성-14형과 같이 사거리가 충분히 긴 ICBM급 미사일이 미국 대도시를 타격할 수 있는 불확실한 가능성만으로도 미국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 당국도 북한의 점증하는 핵·미사일 위협을 우려하면서도 ICBM 기술 수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이번 미사일 시험발사가 지난 4일 시험발사보다 사거리를 늘린 것은 사실"이라며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